NEAR NEWBURY STATION, ILFORD, ESSEX, UK - OCT 2011 HWP

우리나라 방송 일기예보는 기상 캐스터라고 하는 쭉빵 언니들 차지지만 영국 BBC 방송 일기예보를 보면 우리나라 기상 캐스터와는 거리가 먼, 아랫배에 살 좀 붙은 나이 지긋한 언니가 등장 하거나 심지어 앞이마 훌러덩 까진 아저씨도 더러 일기예보를 전하겠다고 방송 화면에 등장한다. 내일 날씨를 알아보려고 이 기상 캐스터들이 전하는 일기예보를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다. 기상 캐스터가 화면에 등장하는 첫 순간 캐스터의 표정이 벙긋벙긋 하면 내일 기막히게 맑은 좋은 날씨라는 뜻이고 눈 사이 주름이 잡히는 심각한 표정으로 등장하면 내일 날씨 꽝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영국, 세익스피어의 나라, 연극의 나라, 연기의 나라 아니던가? 기상캐스터의 표정연기와 그 과장된 영국식 억양을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나다.

 

차를 몰고 런던 시내 중심가에 들어간다는 것은 차 속에서 갇혀 시간 다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영국 수도이자 서울보다 큰 대도시이니 런던 시내 교통 혼잡은 당연한 일이지만 교통 정체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고 런던 시내 도로 전 구간의 차량 통행 제한 속도가 시속 30마일, 시속 50km의 속도 제한이 있어서 도로가 뻥 뚫린다 한들 마음 놓고 밟을 수가 없다. 가끔 런던 시내에서 자가 운전을 하며 서울도 시내 전 구간, 인심 좀 써서 시속 60km 정도의 속도 제한을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했다. 아무튼 제한 속도가 그렇다고 운전자들이 모두 교통 법규를 지키지는 않을테니 뚫리면 밟으면 되지 않겠는가 착각하면 안 된다. 영국의 모든 차량속도위반 감시카메라는 런던에 모두 집결했다 싶을 정도로 구간구간 노란색 속도위반 감시 카메라 천지이기 때문에. 또한 런던 시내 중심가에 들어가는 모든 차량은 혼잡통행료(congestion charge)를 내야한다. 하루 11.5파운드, 우리 돈으로 2만원 상당 되겠다. 인터넷으로 미리 선불하면 할인해주고 깜빡 잊고 런던 시내에 들어가더라도 다음날까지 결제하면 불이익은 없으나 이 기한을 넘기면 무시무시한 60파운드, 10만원 상당 과징금 고지서가 날아온다. 뭐 이런 개 같은 제도가 있냐고 불평불만하면 안 된다. 이 혼잡통행료가 의미하는 바, 간단하다. 차 몰고 런던 시내 중심가에 들어가지 말란 뜻이다.

 

런던사무실에 일 보러 나갈 때는 기차와 지하철을 이용했다. 그래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피치 못하게 차를 몰아 런던 시내에 들어갈 일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때는 런던지하철 센트럴라인 북동쪽 외곽 지역인 뉴버리 파크역(Newbury Park Station) 공영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다음 지하철을 타고 런던 중심가에 위치한 런던사무실을 찾아 가곤 했다. 뉴버리역의 공영주차장의 주차요금 결제는, 그리고 거의 모든 영국 공영주차장의 요금결제는 신용카드도 안 되고 지폐도 안 되며 오직 두꺼운 1파운드 동전을 주차요금계산기에 넣고 주차할 시간을 대충 짐작해서 주차 티켓 자판기에서 결제한 다음 주차 티켓을 차 앞 유리창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어야 한다. 주차요금계산기 중에는 더러 거스름 돈 안준다는 안내 문구를 당당히 내건 것도 적지 않다. 영국에서는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냐고 불평불만할 일이 아니다. 이 안내문구가 주장하는 바는 간단하다. 차 몰고 다니지 말라는 말이다. 게다가 주차요금 계산이 틀어져 주차 시간을 넘기면 찐한 보복으로 주차시간초과 청구서가 집으로 날아온다. 기한 내 납부하면 60파운드, 기한을 넘기면 100파운드, 당시 환율로 18만 원짜리 청구서 되겠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더러 자가운전자이기는 하나 일년 중 대부분은 보행자이자 대중교통 이용자이므로 운전자에게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이 영국식이 그다지 불공평하다거나 나쁜 시스템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차 몰고 다니지 않으면 그뿐 아닌가?

 

뉴버리에 차를 대고 런던사무실로 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차를 주차시킨 다음 유리창 잘 보이는 곳에 주차권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너무도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사진 정보로는 10월에 찍은 사진인데 대체 영국 10월 날씨에 어찌 저렇게 푸르고 맑은 하늘이었을까 놀랠 정도로 하늘 위에는 비행기의 비행운은 물론 아마 수천 미터 상공을 날고 있을 비행기의 윤곽까지 영국에서 쓰던 아이폰4의 폰카에 잡혔다. 옛 아이폰에 잡힌 영국의 하늘이 이렇다. 물론 연중 이런 날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 전날 나는 BBC의 일기예보를 보았을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전날 방송 화면에 등장한 기상 캐스터의 입이 귀에 걸렸을 거라는 것만은 틀림없겠다.

 

LATELY

STEVIE WONDER

'○ 영국 이야기 > 런던 스트리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버티백화점  (0) 2022.06.21
버킹엄 궁전  (0) 2022.06.13
노팅 힐  (0) 2021.10.22
본드 스트리트  (0) 2021.10.10
해밀턴 홀  (0) 2021.07.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