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쌀쌀해진 이번 주말에 집에서 영화 『사도』를 내려 봤다. 개봉 광고가 요란할 때 보고 싶던 영화였는데 광고처럼 대단한 볼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보다 대체 그 뻔한 이야기로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조선 왕조 스물 한 번 째 임금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죽이는 이 가족잔혹극은 지금껏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다루었던 것이라 식상할 수도 있는데 『사도』는 앞서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 또 내가 알고 있는 그 가족잔혹사와 다른 특별한 점이 있긴 있었다.
유교적 법치를 내세운 왕조국가 조선에서 아랫사람이라 하여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짓은 아무리 세자가 한 짓이라 한들 간단히 용납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비록 오늘날 용어로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사도세자가 이유 없이 아랫사람을 살해하고 심지어 임금을 시해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았으니 임금은 이를 묵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뒤주에 집어넣어 아사(餓死)시켰을까? 영화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임금을 죽이려는 것은 역모인데 아들을 역모의 죄명으로 사형시키면 연좌죄를 묻던 당시에는 법에 따라 그 아비도 역적이 되는 것이니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놓고 죽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영화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사도세자가 부친인 영조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사도세자는 왜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게다가 임금인 아버지까지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을까? 영화 속 부자간의 대화를 곱씹어보면 그 실마리가 드러난다. 독선적인 아버지는 아들의 허물에 대해 가차 없는 질책을 반복하고 그것을 아버지는 임금과 세자관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항변한다. 그러나 자기는 인간적인 약점을 거리낌 없이 노출하면서 아들에게 완벽함을 강요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자 아들에 반복하여 마음의 상처를 주는 아버지의 행동이 과연 임금과 세자라는 부자 간 특수관계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사도』는 조선시대 뻔한 궁중 역사극임과 동시에 오늘날 우리들의 가족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특별한 영화였다.
영조 임금으로 분한 송강호의 연기에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연기에 긴장을 끈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그가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라도 결국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고 마는 고수이기 때문이리라. 별 남길 말이 없는 영화 『베테랑』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처 입은 맹수의 흉내를 내는 유아인의 연기는 좀 더 지켜볼 일이라 의문 부호로 남겨두고 영화 막바지에 환갑을 맞은 혜경궁 홍씨를 연기하기 위해 노인 분장을 하고 등장한 문근영의 모습은 아무래도 나이든 다른 연기자를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때 등장한 정조 임금 역의 소지섭이 뜬금없기도 마찬가지였다. 그 뻔한 이야기로 수많은 관객을 모으고 감동시킨 좋은 영화가 남긴 옥의 티 같은 것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