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영화를 꺼내 보는 것 외 요즘 달리 할 일이 없어서 『심야식당』과 『이상한 곶의 이야기』라는 일본 영화 두 편을 봤다. 곶, 한자 갑(岬)은 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간 해변 언덕이라는 뜻이다. 두 영화는 전혀 다른 배경과 전혀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데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라는 주제는 똑 같다. 두 번째 영화 『이상한 곶의 이야기』를 볼 때는 혹시 이 영화가 『심야식당』의 연장선에 있는 뉴 버전이 아닐까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일본 영화는 대개 초반에 영화를 계속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그 고민을 넘기면 끝날 때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초반부터 강하게 치고 들어가야 하는 요즘 영화와 차별화 되는 대목이다. 고민 끝에 그만 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깨끗하게 닫아 버린 일본 영화도 많고 고민을 넘기고 그 끝에 감동을 느낀 일본 영화도 많다. 소개하는 두 영화는 끝까지 본 영화다. 두 작품은 유명한 일본 만화와 소설을 그 원작으로 삼고 있다. 한때 일본 만화를 즐겼고 일본 소설도 제법 읽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만화건 소설이건 가까이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영화가 많이 다루는 공포극, 폭력극은 내 취향이 정말 아니라 논외로 치고 내가 본 대부분의 일본 영화에는 타인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그로부터 우러나온 배려심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더러 개차반 같은 인간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역시 선한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에 항상 개과천선하는 결말을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간접적으로 접하는 세상과 매일 부대끼는 주변의 사람들이 어디 일본 영화 같기만 하던가? 우리는 간접적으로 접하는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개인적으로 겪는 주변의 이기심에 가슴 아파하는 경우가 얼마나 잦은가?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살기 위해 세상이, 주변이 그렇게 야박하지만은 않다는 증거들을 봐야 한다. 내가 일본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직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남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상한 곶의 이야기』 열린 바다가 훤히 보이는 해안 절벽 위에 찾집을 내고 장작불이 타오르는 화목 난로 곁에 앉아 한 세월 보내고 싶다는 헛된 희망을 잠시 품게 만들었다. 자정에 가게 문을 열어 아침 일곱 시에 문을 닫는 『심야식당』은 요리에 통 흥미도 재주도 없기 때문에 감정 이입이 쉽게 되지 않았지만 설거지는 자신 있으므로 심야식당 알바 정도는 거뜬히 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품게 했다. 영화는 끝났다. 말도 안 되는 꿈은 일단 접고 일어서야지. 복귀가 얼마 남지 않았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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