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메운 인파의 물결과 밤늦도록 꺼질 줄 모르는 도심의 불빛들을 바라보면 이제 한 해 다 저물어 간다는 아쉬움에 젖게 되고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라는 광고 카피가 절실하게 다가오게 마련인 것이 요즈음 연말이 가까워지는 시기이다. 여기 따뜻함이 그리운 사람들을 위한 영화,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이 엮어내는 사랑이야기를 그린 1990년에 나온 옛 영화 『스탠리와 아이리스』(Stanley & Iris)가 있다.

 

아이리스는 병으로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미혼모가 되어 버린 딸, 여동생 부부와 그의 아이, 이렇게 다섯 식구를 떠맡아야 하는 가장이다. 과자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는 아이리스는 주급을 받아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도중에 돈과 신용카드가 든 가방을 날치기 당하고 이때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스탠리의 도움을 받는다. 같은 공장 구내식당 조리사로 일하던 스탠리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문맹이다. 떠돌이 식기 장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떠돌며 어린 시절을 보낸 스탠리는 학교에 다니며 글을 배울 기회를 잃어 버렸던 것이다. 스탠리의 순수함에 관심을 가진 아이리스는 그와 자주 접촉할 기회를 가지다 그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알아 버린다. 글을 몰라 도둑으로 의심받고 실직하며 늙은 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낼 수밖에 없고 그 아버지의 사망을 알리는 전보조차 읽을 수 없으며 면허증을 취득할 수도 없고 버스노선표를 볼 수 없어 자전거만 타고 다니는 스탠리는 남편을 잃은 슬픔과 생활고에 힘겨운 아이리스의 도움으로 글을 깨우쳐 나가고 타고난 영리함과 성실함으로 다시 좋은 직장을 얻게 되어 아이리스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글을 깨우친 스탠리는 아이리스에게 생일카드 발렌타이데이 카드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스물 네 번의 할부금이 남은 세단을 몰고 아이리스를 찾아와 청혼한다. 시끄럽고 골치덩어리인 다섯 가족과 한 집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묻는 아이리스에게 스탠리는 "사랑에 불가능은 없다."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영화 『대부』에서 마피아의 대부 꼴레오네(Corleone)로서의 로버트 드 니로를 기억하고 『디어헌터』와 『택시 드라이버』에서 시대와 전쟁의 상처로 고뇌하는 젊은이로서의 로버트 드 니로를 기억하고 『언터쳐블스』에서 야구 방망이로 부하를 쳐죽이는 알 카포네(Al Capone)로서의 로버트 드 니로를 기억한다. 그러나 늙은 아버지를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양로원에 맡기면서 울먹이는 『스텐리와 아이리스』에서의 순박한 스탠리로서의 로버트 드 니로 역시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명배우의 명성은 한 두 편의 히트작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명배우에게 어울리는 상대로서의 제인 폰다의 호연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그리고 중년의 남녀 중절모의 신사도 아니고 흰 드레스의 숙녀도 아니며 깎아 놓은 듯 잘생긴 청춘의 미남 미녀도 아닌 노동자 계층 남녀의 사랑은 신사와 숙녀, 미남과 미녀의 로맨스보다 더욱 애틋하고 아름답다.

 

한 해가 가고 우리는 또 저마다 한 살 씩 더 먹게 된다. 스탠리와 아이리스처럼 아직 사랑할 수 있는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계절에 정치도 경제도 시대도 잠시 잊고 늦은 밤 비디오 화면으로 스탠리와 아이리스의 이야기를 보고 난 다음에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올려다 보라. 노랫말처럼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더라도 마음은 따뜻하고 넉넉해 질 것이다. 그렇다. 좋아하는 「I Don't Like To Sleep Alone」라는 노래의 노랫말처럼 "Nothing's wrong when love is right."이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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