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1박2일이 찾아간 곳은 강원도 영월이었다. 방송을 보며 강원도 영월을 배경으로 한 영화 『라디오 스타』가 생각나 몇 자 남기려 한다. 살면서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하는 소질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인데 이런저런 잡문을 잘도 늘어놓았구나 싶지만 정작 쓰고 싶은 글을 잘 쓰는 소질은 없구나 싶을 때가 있다.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보고 난 느낌이 그랬다. 『라디오 스타』를 보고 느낀 감동을 그대로 전하자면 멋진 글이 나와야 할 텐데 어디서부터 글을 이어가야할지 갑갑했다. 『라디오 스타』기막히게 잘 만든 영화였다.

 

우리에게 과거란 무엇일까? 우리는 간혹 과거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사서 하기도 한다. 그깟 지난 일 왜 부여잡고 울고 짜고 고뇌하고 번민해야만 하는가 싶지만 그래도 과거에서 헤어날 수 없는 게 사람이다. 누군들 잘 나가던 왕년이 없었겠냐만 정말 왕년이 있었던 쌍팔년도 가수왕 최곤과 그 쌍팔년도의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우적대는 왕년의 가수왕을 배출한 왕년의 매니저 박민수는 미사리의 카페촌을 전전하다 왕년의 임금 단종이 노산군으로 격하되어 쫓겨난 첩첩산골 강원도 영월의 지방방송의 라디오 진행자로 왕년으로부터 유배를 당했다. 최곤은 그 밑바닥에서 다방 아가씨와 짜장면 배달 철가방과 세탁소 아저씨와 철물점 아저씨와 실업자 청년과 영월 깡촌의 횡단보도가 마치 애비 로드인양 백구두에 빨강 양말 신고 거리를 건너 비닐하우스 공연장을 찾아가는 밴드 이스트 리버(East River)와 스스로 중계소장임을 자처하는 강원도 영월 지방 방송국의 국장과 방송사고로 대도시 원주에서 역시 영월로 유폐당한 피디와 어울리며 무언가를 발견해 나간다. 발견한 무언가가 역시 그 왕년의 자리 발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 보이지 않건만 바로 그 때문에 사람 냄새 나는 영화 한편을 본 기분이었다.

 

『라디오 스타』영화는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을 두 축으로 하는 브로맨스 무비지만 두 배우의 연기에 공치사를 남기고 싶지는 않다. 국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국민학교라는 이름은 바꿔버렸는지 모르지만 국민 여동생도 있고 또 안성기를 일컬어 국민 배우라는 말들을 하지만 나는 안성기의 연기가 이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화 배우라는 외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는 훌륭한 배우라는 점에서는 전혀 이의 없으나 순수하게 연기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안성기 못지않은 좋은 배우가 이 나라에는 여럿 있다. 게다가 잘 나갈 때 광고 섭외가 줄을 이어 한때는 라라라의 맥주 광고로 빅 히트를 친 박중훈 역시 좋은 배우임에 틀림없다는 믿음은 있으나 그 '라라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그런 두 사람을 내세워 걸작 영화가 탄생한 이유는 그 두 사람이 명연기자인 때문이 아니라 시나리오의 힘이며 연출의 힘이고 그 시나리오와 연출에 녹아든 배우와 연기의 힘이며 그래서 결국 영화의 힘이다. 잃어버린 왕년을 찾아서, 좋은 영화를 찾아서 『라디오 스타』한번 더 봐야겠다. 2009

'○ 옛날 영화를 보러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앤드리스 러브  (0) 2022.01.11
그 뻔한 이야기  (0) 2022.01.06
심야식당  (0) 2021.12.20
스탠리와 아이리스  (0) 2021.12.16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0) 2021.12.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