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2016 HWP

 

가끔 저녁때를 놓쳐 버린 날 혼자 찾아가는 심야식당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몇 달 전에 일본 영화 『심야식당』을 보고 그 감상을 몇 자 잡문으로 남긴 포스팅이 있는데 요즘은 같은 상호의 심야식당 단골이 되었다. 심야식당의 주 메뉴는 일본식 면과 밥인데 반주로 소주 한 병 시키면 간장을 푼 국물에 순두부와 양배추, 김치를 적당히 섞어 낸 안주가 추가로 나온다. 기꼬망 간장일까? 젊은 친구 두 사람이 운영하는 심야식당 주인장이자 주방장이자 종업원은 일본 만화 오타쿠들인지 테이블 위에 원피스 피규어를 잔뜩 진열해 놓았다.

주문한 차슈우동 면발을 한 입 가득 넣고 우물거리다가 선반 위를 보니 산토리 위스키 빈병이 즐비하다. 안면이 익어 그런지 주인장이 내게 "혹시 법조계에서 일하시냐?" 물었다. 이게 칭찬인가 욕인가? 챠슈우동의 맛도 그 질문만큼 아리송하다. 우리나라에서 엄하게 쓰께다시 혹은 쯔기다시라는 말로 변해버린, 간단한 술안주를 일컫는 심야식당의 츠키모노(つきもの) 맛이 챠슈우동 맛보다 더 괜찮다.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행동에 사연이 있더라는 스토리는 일본 영화나 드라마,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레파토리다. 내가 심야식당에서 산토리 위스키를 시켜 마신다면 그 츠키모노로 뭐가 나올까 궁금해서인데 츠키모노가 궁금해서 산토리 위스키를 시키는 일은 당연 비상식적인 행동이고 그 외 심야식당에 얽힌 다른 사연이 내게 있을리 없으니 나는 아리송한 맛의 챠수우동과 소주, 그리고 소주에 딸려 나오는 츠키모노로 만족하겠다.

심야식당 면 한그룻에 칠천 원 소주 한병 사천 원, 서울 중심가는 아니지만 음식의 퀄리티에 비해 딱히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나 흠이라면 우리 성인 남자 기준으로는 양이 살짝 작다는 것이다. 그 양도 일본식을 따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나무젓가락에 나무 숟가락, 튀김 오징어 잘라 먹으라고 내 오는 가위와 집게를 받침 접시도 없이 테이블에 그냥 놓고 마는 패턴 역시 나는 그러려니 하나 민감한 사람이라면 썩 좋은 점수를 줄 것 같지 않다.

한때 면이나 고기 자르는데 가위를 들이미는 한국 사람들 행태에 일본 사람들은 경악을 했다는데 요즘은 일본 사람들도 음식 그릇에 가위를 척척 들이미는 모양이다. 이것도 한류라면 한류이리라. 아무튼 그럼에도, 글을 마무리 하려다 보니 빼먹을 뻔 했다. 심야식당, 내가 아는 '혼자 가서' 식사 맛있게 하고 기분 좋게 소주 한병 마실 수 있는 최고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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