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늘 내손에 닿는 가까운 곳에 두고 있는 화첩이 몇 권 있는데 그 중 한 권이 클림트(Gustav Klimt)의 것이다. 클림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분리파((Sezession)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서유럽에서 일어났던 아방가르드(avant-garde) 혹은 아르누보(artnouveau)에 대해서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데 나는 그저 그림을 좋아할 뿐, 회화의 역사나 이론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을뿐더러 별 관심도 없다.
다나에, 클림트, 1907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개인소장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 받는 화가 한 사람을 꼽으라면 클림트의 이름이 빠져서는 안 되겠다. 클림트의 그림이 왜 그토록 사랑 받는가에 대한 분석들이 많지만 이 장광설들이 주장하는 바는 결국 하나로 집약되는데 바로 그의 작품이 대게 야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역시 「다나에」가 압권이다. 그리스의 많은 신들 중 최고 난봉꾼 제우스는 황금의 비로 변하여 벌거벗은 다나에의 사타구니에 흘러내리고 이 황금의 비는 제우스의 정액이므로 다나에가 임신하여 페르세우스를 낳는다는 신화의 모티브를 담은 작품이다. 황금의 비로 변한 제우스가 다나에를 임신시키는 신화 속의 이야기는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에서 렘브란트는 물론 여러 화가들이 주제로 삼았는데 클림트에 이르면 신화는 핑계거리에 불과해진다. 클림트의 그림 속 그녀가 다나에면 어떠하고 어느 잡신이면 어떠하랴. 다나에의 허벅지 사이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황금빛이 제우스의 것이면 어떠하고 또 다른 잡신의 것이면 어떠하랴. 내 눈에는 다나에의 달뜬 표정과 반쯤 벌린 입술, 오른손으로 스스로 쥐고 있는 젖가슴 그리고 흐벅진 장딴지가 가린 국부 사이 어디인가에 있을 보이지 않는 왼손의 움직임만 느껴진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비껴갈 리 없다.
키스, 클림트, 1907~190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벨베데레갤러리
그런데 다나에로는 표현 수위가 과했다 싶었던지, 나중에 드러난 클림트의 드로잉은 포르노그래피 수준이지만, 세상에 선보인 클림트의 완성작으로 「다나에」 만큼 야한 그림을 더 이상 찾기 힘들다. 대신 훨씬 감각적이고 우회적인 야한 그림들이 등장하는데 「키스」 연작은 클림트의 대표작이라 할 만큼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여자는 「다나에」의 그 여자임을 그녀의 얼굴 모습과 표정으로 알 수 있다. 다만 「다나에」에서 혼자 엑스터시를 맛보던 상태로 넋이 나갔던 여자는 이제 꽃단장을 한 어깨 넓은 남자로부터의 키스를 받으며 넋이 나가 있다. 여인의 오른손은 다소곳하게 남자의 어깨에 걸쳐있고 남자의 억센 손이 가녀린 그녀 가슴깨를 붙들고 있자 이 남자의 손을 떼려는 건지 누르는 건지 남자 손목에 붙은 여자의 왼손이 은근하다. 이 그림을 두고 "긍정적인 인간의 성취를 표현하고 있다"는 해석이 보여 한참을 웃었다. 이런 엉뚱한 해석이 나오리라는 것을 클림트는 예견이라도 했을까? 고양이를 안고 마대자루 같은 원피스를 뒤집어쓴 성긴 대머리의 클림트 사진을 보면 당장 혀라도 쏙 빼내야 어울릴 것 같은 표정이다. 클림트는 화려한 기하학적 무늬와 장식들을 화면에 배치하고 황금빛 배경 가운데에 인물을 올려놓은 양식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황금시기 작품’들을 그리는 와중에 남자의 성기를 윤곽선으로 그려놓고 그 안에 표현하고자 하는 여인이나 연인의 이미지를 집어넣는 작업을 습작으로 반복했고 그 결과가 바로 「키스」다. 여인의 오른 손이 남성 성기의 요도구까지 정확히 표현해내고 있으니 남자의 성기야 말로 긍정적인 인간의 성취를 표상하는 짝이다.
포옹, 클림트, 1905. 벨기에 뷔뤼셀 스토클레 궁전 인테리어
그런데 이렇게 성적 이미지를 교묘하게 작품 속에 녹여 넣는 기법은 오늘날 상업광고에 아주 흔한 일이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아르누보가 결국 현대 상업미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던가, 클림트가 보석세공사의 아들이었으며 실제 그와 함께 빈(Wien) 분리파 운동을 한 사람 중에 건축가들이 많았고 클림트가 이들 건축의 실내를 장식할 장식화를 많이 그렸다는 어디서 주워들은 정보들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클림트가 활동하던 19세기말 빈은 프로이드 시공간이 아니던가? 해서 189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까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당시 문화와 과학적 급변의 진앙지 역할을 했다는 것, 그 유명한 빈 왈츠가 완성되었다는 것, 회화에 있어 표현주의 미술의 시발점이었다는 것, 더불어 이 시기에 히틀러가 잠깐 빈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는 것 등등 주워들은 이야기들이 주마간산 격으로 떠오른다. 이 멋진 화가, 클림트의 한국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주최 측이 뿌렸을 뉴스 기사를 읽어보니 최초라느니 대작이라느니 호들갑이 대단하다. 전시 작품 면면에는 「다나에」도 없고 인간성취의 표상인 「키스」도 없어서 앙꼬 빠진 진빵인 줄 알겠다. 그래도 클림트의 작품을 서울에서 볼 수 있다는데 자칭 허접 미술애호가인 나도 외면할 수 없는 일. 게다가 이번 전시작에 포함된 「아담과 이브」라는 작품은 거 참 섹시하게 이브를 그렸다는 감탄을 연발하며 몰래 훔쳐보던 작품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특히 이브의 국부 묘사는 가히 클림트가 아니면 흉내 내지 못할 절묘함 그 자체인데 전시회에 가면 자연스레 누드화 앞에서 오래 발걸음이 머무는 어쩔 수 없는 아저씨라 그 작품 앞에서 시선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주말에 한가람 미술관에 다녀오려다가 방학 중 휴일에 이름 난 미술 전시회의 풍경이 떠오르자 일단보류하고 말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보러 가야지, 야한 인간 성취의 표상을 확인하러, 야한 클림트를 찾아서. 2009
아담과 이브, 클림트, 1917~191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벨베데레갤러리
Louis Armstrong
Kiss of f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