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UNDERGROUND, SOURCE: WIKIPIDIA

 

런던 지하철(London Underground)을 타고 다니다 삼 년여 만에 다시 서울 지하철을 타니 확실히 쾌적함이나 정시성, 저렴한 요금이라는 측면에서 서울 지하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올 여름 영국 날씨는 오랜만에 기록적인 무더위를 기록했고 이 무더위에 냉방이 되지 않는 런던 지하철을 타는 것이 큰 고역이라는 것을 불과 지난주에 경험한 후 이번 주 서울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으니 런던 지하철과 서울 지하철의 차이는 천양지차처럼 느껴진다.

 

런던 지하철에서는 통신 신호가 잡히지 않아 데이터는커녕 전화통화 조차 되지 않는다. 냉방이 되지 않는 지하철 객차 안의 온도는 여름철에 후끈 올라가서 지하철 객차의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운행을 하는데 지하공간을 달리는 기차의 소음이 엄청나서 열차 운행 중에는 옆 사람과 대화하기 조차 쉽지 않다. 그러니 냉방이 짱짱한 서울 지하철 안에서 너나없이 손에 손에 스마트폰을 붙잡고 통화를 하거나, 웹 서핑을 하거나, 방송까지 시청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내 감회가 어떻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서울 지하철에 대해 이런 저런 불만족을 표시해도 런던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지난주 귀국하여 서울 지하철을 타고 있는 나는 괜한 국뽕이 아니라 우리의 서울 지하철이 너무 자랑스럽다.

 

영국의 다른 요금체계도 복잡하지만 런던 지하철의 요금체계도 복잡하기 짝이 없어서 서울 지하철의 요금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런던 지하철 단기 구간의 일반요금은 요즘 환율로 쳐서 대략 7,600원 정도 한다. 서울 지하철 단기 구간 요금이 얼마인지는 - 신용카드로 띡띡 자동결제 되므로 - 정확히 모르겠지만 런던 쪽이 아마도 몇 갑절은 비쌀 것이다. 런던 지하철이 왜 이렇게 후져 빠졌느냐? 런던 지하철이 무려 150년 전, 1863년에 개통된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라는 점은 고려해두어야겠다. 아무튼 선진국 영국에서 살다 돌아와 서울 지하철 객실에 앉은 나는 선진국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편리하고 쾌적한 교통시설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그 기준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터인데 그 점에서 서울은 벌써 런던을 압도하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선진국을 가늠하는 잣대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른바 국민소득이겠는데 아직까지 영국과 우리나라의 명목 국민소득 격차는 꽤 크지만 이 명목 소득에 통화 별 구매력 격차 즉, 국가별 물가 차이를 감안하여 산출한 구매력평가(Purchasing Power Parity) 국민소득 수치는 영국과 우리나라가 거의 차이 나지 않는다. 이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영국에 버금가는 이른바 선진국이 아니겠는가 하는 결론에 도달하기 쉽겠다. 그런데 이것을 간단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일까?

 

영국에서 놀란 것 중의 하나는 교통요금과 같은 공공서비스 요금은 물론이려니와 일반서비스 요금의 가격이 놀랍도록 비싸다는 점과 함께 식료품의 가격이 놀랍도록 싸다는 점이었다. 이른바 우리 식으로 장바구니 물가가 무척 싸다는 것인데 이는 내 경험이기도 하거니와 영국에서 마트를 수시로 드나들던 아내도 내린 결론이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심지어 아내는 식료품 가격에 관한 한 서울의 물가보다 런던의 물가가 더 쌀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외식을 하지 않는다면 영국인들의 소득수준을 감안할 때 영국 식료품 가격은 더욱 싸게 느껴질 것이다.

 

다음으로 놀란 점은 영국이 전 국민에 대해 완전한 무상의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무상의료 서비스의 질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치는 것이 좋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고가의 의료비가 드는 희귀 질환이나 난치 질환을 겪는 환자라 할지라도 그 치료를 위해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아 먹는 일은 적어도 영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약간의 돈이 들어가는 의사의 처방전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처방약이 감기몸살 약이건 난치병 치료에 필요한 고가의 신약이건 차별 없이 무료로 약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전국민에 대한 무상의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부 재정이 들게 마련이고 영국 정부는 이 재정마련을 위해 매년 안간힘을 쓰며 이 문제는 영국에서 이미 세월을 초월한 정치적 쟁점이 된 지 오래이다. 하지만 세수가 뻔한 상황에서 정부의 안간힘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이 한계는 결국 무상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와 직결된다. 내가 아는 영국 주재원 가족 한 분은 수술로 간단히 치료될 수 있으나 수술 때까지는 심한 통증을 견뎌야 하는 질환을 앓았다 한다. 진단 후 환자의 수술 날짜를 잡는데 2주가 걸렸고 약속된 날짜에 병원에 도착하고서도 결국 그날 수술을 받지 못해 다시 일주일을 더 기다리고서야 수술을 받았다 한다. 병원이 수술 날짜를 연기한 이유는 단지 그날 의사들이 바빠서라 하더라며 주재원 모임에서 소주를 거나하게 드신 그분은 우리 기준으로는 어처구니없는 영국의 의료체계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물론 그분은 환자 수술에 돈은 전혀 지불하지 않았으리라. 차라리 그분에게는 치료비가 비싼 환자일수록 극진한 서비스로 모신다는 미국의 의료체계가 훨씬 나았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다친 아들을 치료하려고 영국에서 병원을 찾았다가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겪어서 그분의 분통에 일언반구를 달지는 않았다.

 

전혀 상관없는 조합 같지만 저렴한 식료품 가격과 완전 무상으로 제공하는 의료 체계가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회 현상들의 상관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결론을 내릴만한 지식이 내게는 없지만 학교에서 배우시지 못한 우리 어머니 표현 그대로 없는 사람들이 살기에 그나마 나은 사회, 그런 사회의 모습이 오늘의, 어쩌면 아직도 남아 있는 영국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는 사람들이란 아마도 배운 사람들의 표현으로는 사회적 약자라 할 것이다. 무상의료체계의 유지와 함께 오늘날 영국은 불법이민자들 문제로 큰 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 불법이민자들이 영국으로 몰리고 또 몰리는 것일까? 단지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어느 사회건 불법이민자들이야말로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일 것이고 그나마 영국이라는 나라가 이 사회적 약자들을 아직도 배려하고 있는 시늉이라도 하는 그런 나라라서 불법이민자들이 영국으로 몰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어떤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다만 국가 기간시설이 잘 되어 있고 국가의 총소득을 국민의 수로 나눈 평균 소득이 높다고 그 나라를 선진국으로 부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 어렴풋한 가운데 사회적 약자를 얼마나 배려하는 사회인가 그것이 선진국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여의 영국생활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라면 영국에서의 생활은 나름 내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냉방이 짱짱한 서울 지하철에 앉아 과연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것인가, 우리나라도 영국만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있는가 혼자 되물으면서.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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