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서퍽 입시치 워터프론트

Ipswich Waterfront, Suffolk, UK

AUG 2011 HWP

 

 

리인액트(historical reenactment)는 특정 역사적 사건을 재연해내는 문화활동이자 취미활동을 뜻하며 정확한 역사적 사건과 장면의 재연이 강조된다는 측면에서 영화나 만화 혹은 게임 등의 등장인물을 모방하는 코스프레와 구별된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리인액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 영국에서 본 리인액트는 그 다양함이나 규모에서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위 사진은 내가 살던 영국 서퍽의 축제에서 담아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이 사용했던 스핏파이어(Spitfire)라는 전투기의 리인액트 사진인데 물론 저 비행기는 지금도 옛 그대로의 방식으로 비행 가능하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은 전 유럽대륙 대부분을 단숨에 석권하고 이어 섬나라 영국 침공을 계획하고 있었다. 히틀러를 정점으로 한 독일 수뇌부는 처음에 대규모 상륙군을 보내 영국을 제압할 생각을 했으나 여러 사정 상 상륙작전은 일단 접고 공군력만으로 영국을 굴복시키겠다는 방향으로 계획을 바꾸어 영불 해협 건너 영국 도시들에 대해 대규모 공습작전을 단행했다. 유럽 대륙에서의 굴욕적인 패전으로 풍전등화에 놓인 영국에는 그러나 잘 훈련된 전투기 조종사들과 당시 기준으로는 독일 전투기에 못지 않은 뛰어난 성능을 가진 전투기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스핏파이어라는 기종이었다. 독일군의 거듭 되는 공습을 맞아 영국의 스핏파이어는 훌륭하게 방어작전을 펼쳤고 마침내 영국을 독일 침공으로부터 구해내는 큰 역할을 한 것이니 영국 사람들의 스핏파이어에 대한 긍지는 아직도 실 가동 기체를 리인액트 행사에 등장시킬 만큼 대단한 것이다.

다만, 영국에서 이런 진기한 구경거리들을 접하면서 마음 한구석 씁쓸한 기분이 든 것은 이들 리인액트 활동이 거의 대두분 군사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한때 세계의 패권을 차지한, 그리고 아직도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서유럽인들의 역사야 말로 군대를 동원해 다른 민족,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에 다름 아니니 리인액트 활동에 어른거리는 서구의 침략주의와 그에 대한 그들의 득의양양함이 먼 극동에서 영국으로 날아간 내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했다는 점 역시 어찌 언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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