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 제목이 『어느 시인의 흙집일기』이다.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아들 딸 낳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 잘 하던 마흔 초입의 시인은 더럭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낙향, 고향인 경북 왜관에 손수 흙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 낙향의 변은 책의 머리말에 ‘남은 삶을 가족들의 삶이 아름다워지는데 쓰기 위해서’라고 쓰여 있다.

나도 늘 내 손으로 지은 ‘시골의 흙집’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내 꿈속에는 내 삶만 있지 가족들의 삶이 없다. 게다가 시인의 부모님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남아 낙향한 시인을 반겨준 시골, 고향이 내게는 없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벽이 올라간 흙집 앞에서 4대가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은 시인은 아마도 직장을 다니는 아내와 젖먹이 아들을 서울에 남겨두고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그 흙집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자정에 가까운 시간 베란다로 나갔다. 밤을 밝히는 서울의 가등과 네온 불빛이 아름다웠다. 남향으로 큰 창을 낸 시인의 흙집에서 바라보는 밤, 그 시골의 흙집 앞 밤하늘도 서울의 밤과 같이 아름다울까?

살아지니까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시인의 일기 속에도 그 답을 찾을 수 없고 오늘도 요령부득, 앞으로도 쭉 요령부득이면 어쩌나 싶어 서재의 불을 밝히니 책상 위에 표창장이 한 장 놓여 있다. 저녁 무렵 아이는 개교기념 전교 글짓기 대회에서 우수상도 아니고 최우수상을 받았노라 귀가 멍멍할 정도로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쳤고, 아이가 잠든 후 귀가한 칭찬에 인색한 아비의 서재 책상 위에는 표창장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2009

'○ 작은 책꽂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원한 안식 위에서  (0) 2021.12.03
바람을 품은 돌집  (0) 2021.12.02
우리 사발 이야기  (0) 2021.12.01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0) 2021.11.29
인디언 : 이야기로 읽는 인디언 역사  (0) 2021.11.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