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1년 스페인 국왕의 후원을 콜럼버스 그 일행은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뱃길을 개척하겠다는 계획으로 대서양을 횡단 카리브해 서인도제도의 한 섬에 도착했다. 그는 그것으로 자신이 인도로 가는 뱃길을 개척했고 죽는 날까지 그곳을 인도로 알았다. 그래서 그곳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지금껏 인디언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항로가 열렸으니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 진출은 물밀 듯 이어졌고 이 진출은 곧 야만적인 침략으로 돌변하여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인의 문화와 문명을 철저하게 짓밟고 말았다. 그렇다면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와 문명은 어떤 것이었을까? 책 『인디언』 그 해답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연구 성과에 따르면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 대륙에 오래되고 발달된 문명사회가 존재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동시대의 유럽보다 더 인구가 밀집된 체계적인 농경 사회를 이루었으며 대규모의 관개 공사, 발전된 농법으로 농업 생산성 역시 훨씬 높은 수준에 있었다. 즉 경제적으로 유럽보다 훨씬 풍요로운 사회였다는 것이다. 인도인들이 처음 고안했다고 알려진 것보다 1세기나 앞서 숫자 0의 개념을 알고 있었으며 1,200개의 개별언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 즉 최소 1,200개가 넘는 독자적 문화권이 존재했으니 문화적 다양성이야 달리 부언을 할 필요도 없겠다. 옥수수를 비롯하여 오늘날 전 세계 식탁 위에 오르는 곡물의 5분의 3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경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열등한 자들에게 붙여진 이름 인디언, 즉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생태 환경을 개척하는 동시에 자연과의 조화를 절묘하게 유지한 진정한 문명인이었다. 이러한 발전된 문명 사회가 어떻게 순식간에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 것일까?
최근에 본 『아포칼립토』라는 영화는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내부적 부조리, 산 사람을 인신공양하는 야만적 습성이나 노예경제에 의존하는 사회의 후진성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가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편향적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00년 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에 바다가 얼어붙어 해수면이 굉장히 낮아졌다. 이때 아시아대륙과 아메리카 대륙 사이 오늘날 알래스카 베링해 지역이 육지가 되어 두 대륙이 육로로 연결되자 짧은 기간 동안 구석기 아시아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베링해의 육로는 빙하기가 끝나자 금방 다시 바다로 채워져 두 대륙은 다시 격리되었으며 구석기 문명을 가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아시아인들이 구석기 시대 이후 줄곧 원시 상태에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았다는 인식이 서구 사회를 지배해 왔다. 그리고 서구 학자들은 빈약한 고고학적 유물을 바탕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기껏해야 수동적인 자연주의자이거나 고상한 야만인이라고 한정시켰다. 이러한 인식은 저급한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이 발전한 유럽인들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말았다는 한편으로는 필연적 숙명론을, 다른 한편으로는 교묘한 인종주의를 뒷받침해왔던 것이다.
소개하는 책 『인디언』의 저자는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에 대한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러한 그릇된 인식을 일거에 전환시킬 놀라운 사실을 제시한다.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을 절멸시킨 장본인이 바로 유럽에서 건너온 병원균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와 달리 아메리카 대륙은 마지막 빙하기 이후 타 문명권과 전혀 교류가 없는 고립된 대륙이었다. 유럽의 중세에 페스트가 창궐하였으며 한 순간에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이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며 그 밖에도 천연두와 유행성 감기와 같은 병원성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는 사료는 유럽사 행간에 수없이 발견된다. 콜럼버스 시대 유럽인들은 이미 이런 질병에 대해 내성을 확보한 사람들의 후손들이었던 것이다. 반면 고립된 대륙에서 스스로 문명을 꽃피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이러한 병원성 전염병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었으며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출입이 잦아지자 전염병이 급속도로 번져 저자에 따르자면 유럽인과 접촉한 이래 130년 만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95퍼센트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인구의 95 퍼센트가 130년 안에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은 문명 그래서 한 줌도 되지 않은 유럽의 정복자들은 수 천 미터 고산지대에, 적도의 정글에 거대한 계획도시를 세운 문명인들을 손쉽게 절멸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유럽인들이 전파한 병원균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이 파국이 나버렸다는 것인데 한편 이런 주장은 유럽인의 아메리카 침략에 면죄부를 줄 소지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역사적 증거를 제시하며 결코 유럽인들이 면죄부를 받을 수 없음을 지적한다. 유럽인들은 몽골제국의 침략기에 몽골군이 전염병으로 죽은 시신을 유럽인이 농성하고 있는 성채에 집어 던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유럽인들은 이러한 종류의 병원성 전염병이 환자나 시신 등 병원체에 접근하면서 강력한 전염력을 지닌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일반인들이 몰랐던 혹은 잘못 알고 있었던 아메리카 원주민, 곧 용어자체도 틀린 인디언에 대한 부정적이고 낭만적인 시각을 걷어 내고 여러 인류학자, 고고학자, 생태학자, 역사학자들이 발견한 새로운 증거물들을 바탕으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놀라운 비밀들을 밝히고 있다. 물론 전염병에 의한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의 절멸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모든 학자들이 동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뿐더러 혹은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진 학자도 있다. 그래서 필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유력한 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겠다. 이렇게 객관적 엄정성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다 쳐도 우리는 『인디언』을 통하여 최소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풍요로운 나라를 건설한 문명인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들은 다른 문명들이 상호 교섭과 충돌과정을 거치며 성장했던 과정과는 달리 고립된 대륙에서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킨 역동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또 알 수 있다. 그래서 인류학적 주제들, 오늘날 현대인과 현대문명을 있게 한 근원적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디언』은 놓쳐서는 안될 책이라 하겠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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