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묵혀두었던 『우리 사발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사발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조선시대의 사발은 청자니 분청이니 백자니 하는 자기와는 달리 생활 용기로 널리 사용되던 자기의 일종인데 조선의 생활용기였던 사발이 일본에 건너가 마침 일본에서 개화하던 다도(茶道)와 맞물려 차 용기로 사용되었고 심지어는 오늘날 일본의 국보로까지 지정되었다는 것인데 스스로 사기장이라 칭하는 사발 공예가 신한균이라는 분이 저자로 되어 있다.

 

저자는 일본에서 다도의 명품으로 대접받던 조선의 사발이 실은 제기로 사용되던 것이라는 점과 임진왜란 중에 수많은 조선의 도공을 납치해간 일본이 도자기 산업을 일으키고 이를 서구에 수출하여 산업화를 위한 부를 축적했으며 근대 이후 서구의 대량 생산 기법을 배운 일본인들이 오히려 우리나라에 도자기를 역수출, 사발과 같은 생활용기 시장까지 잠식하여 마침내는 우리나라 전통 도자기의 명맥을 끊어 버렸다는 아쉬움을 여러 장으로 나뉜 책의 행간에 절절이 토로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책에 밝힌 이력에 의하면, 일본에서 이도자완(井戶茶碗)이라고 불리며 일본의 국보나 보물급으로 지정된 조선의 사발을 현대에 완벽하게 재현해 낸 도예가의 장남으로서, 일본 동경에서 도예 개인전을 열었고 한국 공예 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했고 회령 유약을 국내 최초로 재현했고 일본 NHK에서 그의 작도 과정을 일본 전역에 생중계 했던 경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현재는 작도 활동을 하면서 우리 도자기에 묻어 있는 일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 옛그릇 이름 되찾기 운동'을 하고 있고 일본학자가 왜곡한 우리 도자사와 미학자들이 왜곡한 도자기의 본질을 바로잡기 위해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책은 부피와 무게가 무색하지 않게 잊혀질뻔 한 우리 조선 사발들의 기구한 운명과 우리 도자기 역사 되찾기, 불때기 등 전통 기법의 재현까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또한 이런 저런 경로로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사발들의 진기한 사진 400여 컷도 함께 소개되어 일본인들이 그토록 탐낸다는 우리 옛 사발에 대한 백과사전으로 손색없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울러 조선 사기장의 후예로서 15세기 도자기 종주국의 영광을 누렸던 한민족으로서 자존심과 사명감을 불태우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사발들의 신비와 사기장들의 드라마틱한 삶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물론 이들 사기장이 얼마나 엄청난 심미안을 가졌는지 중언에 부언을 반복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조선의 사발을 막사발로 폄하하면서도 이 막사발을 소유하기 위해 침략까지 서슴지 않았던 일본인의 이중성을 꼬집고 있다.

 

일단 그렇고, 두꺼운 책장을 한 쪽씩 한 쪽씩 넘기는 동안 처음에는 책에 소개된 저자의 화려한 이력의 무게가 내 가슴을 누르더니 급기야는 우리 도자기의 역사와 특히 "사학자나 미학자"가 아닌 도자기 기술자 사기장의 시각에서 재해석하겠다는 의욕이 내 가슴을 누르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반복되는 영탄조와 감탄사, 그 치열한 민족혼이 나 같은 범부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조선 시대 사발을 빚은 사기장의 자연과 융화된 심미안에 대한 찬탄을 거듭하면서 조선시대 전통 가옥의 들보와 기둥이 비틀어진 나무로 접합되어 있는 참고 사진을 실어 놓고는 이 또한 담백한 조선시대 사발과 마찬가지로 조선 시대 장인이 추구한 자연미의 결과라며 찬탄을 거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전통 예술에 지식이 없기로 조선 시대 어느 궁궐에 혹은 아흔 아홉 칸 반가(班家)에 비틀어진 재목을 들보로 쓰고 기둥으로 썼다고 하던가? 물론 비틀어진 재목의 결을 살리고 선을 합하여 훌륭한 조형미를 만든 조선 시대 장인의 손재주와 미적 감각은 찬사 받아 마땅한 일이다. 다만 이것은 명백히 가옥 건축을 위한 재목 부족과 그 가공기술 혹은 재원의 부족에서 기인한 결과라고 우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일본에 건너가 국보가 되고 보물이 되고 혹은 명품이 된 조선 시대 사발은 명백히 우리 조상들이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던 , 저자가 그토록 싫어하는 낱말인 생활 용기인 '막사발'일 따름이다. 또한 저자가 우리 옛 사발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고 아무리 주장한들 비싼 가치를 지불하고 이를 되 사들일 우리나라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일본인과 우리나라 사람의 미적 가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본에 있는 조선의 옛 사발이 일본에서 통곡을 하고 있다느니 하는 저자의 감상은 아무래도 감정과잉 같다. 다른 미의식과 미에 대한 가치체계를 가지고 우리의 사소한 것에 대해 미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들 사정이지 우리의 사정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 막사발들이 일본에서 호강하고 있다고 한들 그게 무슨 원통할 일인가? 우리 조상이 막사발 취급하던 것을 국보로 애지중지 하니 오히려 자랑스럽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주체하기에는 버거운 오바를 제외한다면 『우리 사발 이야기』는 책에 수록된 많은 참고 사진들만으로 제 역할을 천 번 만 번 훌륭히 해낸 좋은 책이라 하겠다. 나처럼 문외한에다 낮은 심미안을 가진 사람의 눈에도 책에 소개된 우리 옛 조상이 빚어 일본의 문화재가 된 생활 용기 사발은 참으로 아름답고 탁월한 조형미를 가지고 있다 싶었다. 다만 그 사발이 통곡을 하건 하찮은 막사발로 남든 그것은 저자가 목 놓아 울어 행간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 놓을 일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판단할 몫으로 남겨 놓아야 할 일이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흔히 접하기 어려운 애걸복걸해야 겨우 보여준다는 과거 조선의 막사발이자 현재 일본의 국보인 자완(茶碗)들을 소개하는 선에서 딱 그쳤으면 참 좋았으련만 역사적 사실은 감정이 육하원칙 전에 이입되면 제 아무리 그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결국은 왜곡이 되기 쉽다. 대저 이런 과도한 감정이입이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양산한다는 것은 나이가 제법 먹은 뒤에 알게된 것이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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