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5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를 읽다가 중학교 때 배운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 「장안사」라는 곡을 떠올렸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고 음악 성적이 좋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남몰래 노래를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했던 아이였다. 그런 내가 장안사라는 우리 가곡을 각별히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어린 중학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나 이 노래를 듣고 부를 때 마다 그 어린 마음에도 까닭 모를 비감 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책 저자 유홍준의 해설에 의하면 고려 말에 권력층의 비호를 받아 큰 절로 성장한 금강산 장안사(長安寺)는 강원도아리랑에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 봉 팔람 구 암자” - 나는 이 노래를 강병철과 삼태기의 삼태기메들리로부터 기억한다 - 라는 가사가 나올 만큼 뭇 금강사의 사찰과 암자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으나 6.25전쟁 때 전화를 입어 잿더미가 된 후 현재는 그 터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곡 「장안사」는 1933년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곡이고 그때는 아직 사찰 장안사의 위세가 노래 가사처럼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일 만큼 절정이었는데 사찰 장안사를 노래한 가곡 「장안사」는 왜 그처럼 애닮은 가사와 선율을 가지게 되었을까? 곡을 만들 당시에 이미 흥(興)한 장안사의 망(亡)함을 곡을 만든 이들이 뜻하지 않게 예감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유홍준의 첨언이고 나 역시 이에 크게 공감하는 바이다.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 남북 간 화해 분위기를 타고 북한의 금강산이 남한의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었고 많은 우리 관광객들이 금강산을 다녀왔으며 유홍준의 위 책 역시 그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는 빽도가 되고 말았으며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닫혀 언제 다시 열릴지 기약이 없는 것이 그로부터 20년이나 더 지난 2021년, 현재 상황이다.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마다 소화불량인듯한 느낌 그리고 그 반복에서 오는 솔직한 피로감은 별개 감정으로 남겨두고 오랜만에 책을 읽다 생각난 옛 가곡 한 곡을 소리 없이 따라 불러본다.
가곡 장안사
신현식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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