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이나 기업 브랜드는 그 자체로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언론을 통하여 그 순위가 보도되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고 이 보도에 따르면 세계 시장에서 몇몇 우리 기업의 브랜드 가치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기사를 자세히 읽다 보면 씁쓸하게 마련인 것이 우리 기업의 순위에 위에 더 많은 일본 기업 브랜드가 자리잡고 있다는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인들은 경제적으로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문화, 과학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보였다. 아직 우리 작가 그 누구도 수상하지 못했던 노벨문학상을 일본 작가가 수상한 것은 한참 오래 전 일이고 또한 학사 출신의 평범한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주임이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 몇 해 전 일이었다. 내가 부러운 것은 일본인들이 이룬 경제 성과가 아니라 그들의 쌓아온 문화적 과학적 성취와 그로부터 확인하게 되는 일본인들의 저력이다. 몇 년 전 일본을 혼자서 자유롭게 여행 다닌 적이 있다. 그 후로 일본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내 관심권 가까이에 있었고 며칠 전에 한 권의 책을 통하여 왜 서구인들 일본의 브랜드에 친근하고 또한 일본 문화에 쉽게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지 단초를 얻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보아온 익숙함이 그 정체였던 것이다.
모네│일본옷을 입은 모네 부인│1876년│미국 보스턴미술관
Oscar-Claude Monet, La Japonaise, Madame Monet en costume japonais, Museum of Fine Art, Boston, USA
『내가 만난 일본미술 이야기』는 19세기 유럽 미술계에 불어 닥쳤던 일본 회화 열풍, 자포니즘(Japonism) 열풍을 소개한 후 일본의 중세 및 근대 미술사를 주요 화가와 그 작품을 중심으로 개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많은 고흐의 작품들이 근대 일본화가 안도 히로시게(安藤廣重) 작품을 모사한 자포니즘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받은 충격은 컸다. 뿐만 아니라 부인 카미유를 모델로 그린 모네의 작품 '일본 여인'에서 카미유는 아예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일본 부채를 들고 있다. 모네는 말년에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집을 짓고 연못에 다리를 놓은 일본식 정원을 꾸몄다. 이외에도 당대 유럽 회화의 대가들 작품에 녹아 있는 자포니즘의 영향들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고흐│일본풍│1887년│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Vincent Van Gogh, Van Japonaiserie, Gogh Museum, Amsterdam, the Netherlands
지정학적으로 서구 해양세력과의 접촉이 빨랐던 일본은 1889년의 파리 만국박람회에 자국 공산품을 출품했다. 하지만 겨우 대외 문호를 개방하고 산업화에 첫 발을 내디딘 당시 일본이 박람회에 출품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자기와 같은 공예품 정도밖에 없었고 그 출품작들을 일본에서 유럽에 이르는 먼 항해기간 동안 안전하게 운반하려고 포장 완충재로 끼워 놓은 종이 뭉치는 당시 일본에 지천에 널려있을 정도로 흔해 폐지로 이용되던 우키요에(浮世繪)라는 판화였다. 우키요에가 그토록 흔하게 된 데에는 일본 내 판화의 발달과 상공업의 발달, 이에 따른 문화 수요의 증대가 있었다. 포장 완충재로 유럽에 도착한 우키요에는 당시 유럽 화가들에게 아주 생소한 것들이었고 판화 특유의 색채와 조형의 단순함과 강렬함 때문에 당대 유럽 화가들을 열광시켜 유키요에의 특징들을 자기 작품에 차용하는 자포니즘이라는 하나의 사조로 유행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그려진 대가의 걸작들을 수많은 사람들이 감상했을 것이고 산업혁명에 따라 발전한 제지술, 인쇄술 덕택으로 이 자포니즘의 산물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포되었을 것이다. 일본 문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열광과 관심은 이미 19세기 말부터 대단한 것이었다. 일본 문화 기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그 이미지를 입고 등장하는 일본 상품이 어찌 낯설게 느껴지겠으며 반대로 일본 상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일본의 문학, 미술, 음악, 영화가 어찌 낯 설게 느껴지겠는가?
열등감이 무시로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심리현상이다. 우리의 일본에 대한 무시 또는 무관심이 열등감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약일지 모르나 상대를 모르면 극복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만고의 진리다. 무관심을 깨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한데 이 점에서 『내가 만난 일본미술 이야기』의 저자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다만 독자로서 『내가 만난 일본미술 이야기』를 냉정하게 평하자면 신선한 충격에 버금가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장을 읽을 때 느낀 신선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초반의 박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뭔가 미완인 느낌으로 마지막 페이지에 만나는 황당함을 경험했다. 작은 단행본 한 권으로 어떻게 한 국가의 미술사를 개관이나마 하겠냐만 더러 장황한 그림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의 조그만 사진 한 장 얹지 않은 것을 무심함 때문이라 해야 할 지 무책임하다고 해야 할 지 당혹스럽기도 했다. 이런 독자의 아쉬움 역시 저자가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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