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뱃길 아라갑문에서 본 북한산
2013. 8. 24.
전직 대통령 이명박이라는 자가 대통령 후보자로 출마하였을 때 공약으로 내건 정책 가운데 하나가 한반도 대운하를 개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직접 선거를 통하여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막상 취임 하니 이상하게도 여기 저기서 대운하 사업을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급기야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와 맞물려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자 이명박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들의 반대가 많은 대운하 사업도 벌이지 않겠다 공언했다.
그때 즈음 회사 근처 식당가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고기구이집이 - 무슨 잉걸스인가 하는 상호를 가진 체인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성업 중이었는데 대체로 정부 정책에 우호적이게 마련인 공중파 방송조차 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위험성을 알리는데 열을 올리자 미국산 쇠고기 전문점은 폐업을 하고 말았고 기왕에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쓰던 다른 음식점들조차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안내문을 대문짝 만하게 식당 앞에 내걸었다. 그때 나는 방송을 보고, 또 촛불로 타오르던 성난 민심을 보고 미국산 쇠고기가 정말 나쁘구나, 그럼에도 국민건강은 나 몰라라 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려는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구나 했다. 한편으로 입에 좌악 쫙 달라붙는 값싸고 맛난 미국산 쇠고기 등심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어서 그게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하긴 우리 한우건 미국산 수입 쇠고기건 붉은색 육고기가 건강에 좋을 리 없겠기에 ‘에잇, 머 안 먹으면 그뿐이지’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를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을 해놓고 슬그머니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운하를 개발하겠다고 나선 점이었다. 내가 무얼 잘못 알아들었나 싶었을 만큼 대운하와 4대강은 같은 말로 들리는데 대운하를 개발하겠다고 했을 때 그야말로 열화와 같이 들고 일어나 반대 했던 여론은 정작 4대강을 정비하겠다고 말을 바꾸고 나니 언제 그랬냐 싶게 사그라져 버렸던 것이다. 나만 대운하와 4대강을 같은 말로 생각했나? 물론 아직도 4대강 사업으로 물길을 돌려 놓으니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녹차라떼가 떠다닌다는 둥, 오히려 홍수피해가 늘었다 둥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을 알리려 노력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지만 아쉽게도 대통령을 당선시킨, 대운하에 반대하던 그 민심이라는 것은 많은 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대운하와 4대강 사업의 차이점은 ‘운하’라는 말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개발이라고 부르느냐 정비라고 부르느냐의 차이 밖에 없는 듯한데 말이다. 내가 잠시 우리나라를 떠날 때 김포대교 남단에는 그때까지는 경인운하라고 부르던 공사를 위해 삽질 아닌 포크레인 질이 한창이었고 귀국하여 자전거를 타고 그 포크레인 질 현장을 둘러보니 운하는 완공이 되었는데 못난 자식처럼 운하를 운하라 부르지 못하고 아라뱃길이 되어 있었다. 경인운하와 아라뱃길의 차이도 내게는 꼭 대운하와 4대강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이 역시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과문한 내가 알기로 운하의 기본 기능은 물류에 있는데 귀국 후 벌써 두 차례나 자전거를 타고 다녀온 아라뱃길의 거대한 물류 장치장과 크레인은 적막감이 들만치 텅텅 비어 물자가 흐르는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고 운하 옆 둑길을 따라 정말 멋지게 닦아 놓은 자전거길을 따라 자전거들만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이건 운하가 아니라 뱃길이라 우기면 할 말은 없다만 그 뱃길을 건설하는데 무려 2조 2,5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그 예산은 삽질로 땅 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혈세로부터 나와 이른바 삽질하는데 퍼부은 격이리라. 누구는 4대강 사업과 같은 국가적 역사(役事)는 지금 당장 그 성공과 실패를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되며 긴 안목을 가지고 역사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데 물론 나름 일리가 있는 말씀이기는 해도 이런 말들을 쉽게 하는 분들일수록 역사 앞에 파렴치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도 살다 보니 알게 된 깨달음 아닌 깨달음이라 하겠다.
숭명배청(崇明排淸)을 고집한 것도 존경 받아 마땅한 지조와 절개로 친다면 그 상징인 김상헌(金尙憲)이라는 분은 병자호란 뒤 청나라에 끌려가며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라는 유명한 시조를 남겨 후손들에게 지조와 절개의 귀감이 되었다. 내가 시문을 읊을 깜냥에는 어림없으나 한강 자전거길에서 바라보던 삼각산, 곧 북한산과 한강수는 귀국한 뒤 바라봐도 옛날과 다름없어 반갑고 이 한강자전거길이 아라자전거길과 연결되어 인천까지 자전거로 거침없이 달릴 수 있게 되었으니 동호회 회원은 아니나 자전거 동호인의 한 사람을 자처하는 처지로 아주 살판이 나서 신나게 페달을 밟아야 했을 텐데 아라자전거길을 따라 인천에 있는 아라서해갑문까지 갔다가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 페달이 너무도 묵직하게 느껴지던 이유를 잘 모르겠다. 맞바람이 너무 쎄게 불어 그랬나?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