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장봉도
2015. 1.
주말에 가벼운 산행을 즐기는 우리 모임에 신참 한 분이 가입했다. 우리 산행은 서울 시역을 벗어나는 일이 드물고 겨우 음료수 정도 지참하는 수준이며 솔직히 고백하자면 산행보다는 그 끝에 즐기는 술추렴에 더 관심이 많으니 산행은 핑계일 따름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달 초 산행에 새로 가입한 분이 산행 중에 가볍게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기에 그러려니 했더니 당일 가져온 배낭에 라면과 햇반, 그리고 한우 등심을 구워먹을 완벽한 준비를 해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알고 보니 이분은 오래 전부터 소위 캠핑과 같은 아웃도어 활동을 즐겨온 분으로 야외에서의 취사에 필요한 장비 일체를 갖추고 계셨던 것이다. 아무튼 이분 덕분에 우리는 얄팍한 산행 중 거하게 입 호강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난 주 인천 영종도 옆 장봉도 트래킹 일정이 또 잡혔는데 이분이 다시 음식을 장만해오겠다고 하지 않는가? 지난 산행에 얻어먹은 것도 있어 이번에 한우 등심은 얻어먹은 사람들이 준비하겠다 하였더니 그럼 자신은 다른 음식을 준비하여 오겠다 했다. 마침내 트래킹 당일 섬으로 들어가는 페리 선상 위에서 그분은 크래커에 치즈와 딸기, 방울토마토를 얹은 간단한 안주거리를 내놓고는 큰 보온병에 담긴 한산소곡주를 돌리셨다. 이어 섬에 도착하여 두 시간 정도의 트래킹 끝에 목적지인 장봉도 서쪽 끝, 가막머리전망대에 도착하자 다시 준비해온 취사도구를 풀고 음식을 마련하기 시작했는데 이날 우리가 먹은 음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야채를 듬뿍 곁들인 한우 등심구이로 남은 먼저 딴 술병을 비우고 다진 의성 마늘을 곁들인 전복구이로 다시 술 한 병 개봉, 튀긴 고구마전과 군만두로 입가심, 다진 마늘과 버터를 넣은 꽃게찜으로 배를 채우고, 올리브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바질로 토핑한 소세지 구이. 남은 꽃게찜 국물에 끓인 라면으로 최종 마무으리, 그 사이 대용량 1.8리터 소주 패트 한 병이 쓰러졌다. 이렇게 먹고 마시다 보니 겨울 해는 서산을 향해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해서 영종도로 돌아가는 배편을 놓치지 않으려고 특공대가 군장을 지고 언덕을 달리듯 장봉도의 해안 길을 미친 듯 달렸는데 다행히 그날 마지막 배를 놓치지 않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인천공항철도 운서역에서 그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오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한참을 생각하며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지난주에 미처 시청하지 못한 『삼시세끼』를 다운 받아 보았는데 출연자 배우 차승원이 이런 말을 했다. "옛날에는 요리하는 사람을 구차하게 봤는데 요즘은 근사하게 봅니다." 삼시세끼 다 보고 책상에 앉아 인터넷으로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라는 단어를 불현듯 검색한 이유는 오래 전 독일 여행 중에 족발 요리인 학센(Schweinshaxen)에 곁들인 독일식 김치 사우어크라우트가 그렇게 맛나더라는 아내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과유불급, 근사함이 지나쳐 엉뚱한 바람들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