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aë, Gustav Klimt, 1907, Galerie Würthle, Vienna, Austria

다나에, 클림트, 오스트리아 비엔나 갤러리아 보르게제

오래된 이야기인데 영화배우 김부선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명작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고등학생을 꼬셔 보려고 육탄돌격을 감행하는 떡복기집 아줌마로 등장했고 『친절한 금자씨』에도 출연한 바 있는 김부선은 구속에서 풀려난 후 대마초 합법화를 위해 한 몸 바쳐 노력하겠다고 자청하는 기염을 토했고 당시 가수 전인권이 이에 호응하여 자신은 오랜 세월에 걸쳐 대마초를 피워왔는데 아무런 곤란을 겪지 않았노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한편 대마초 전력이 있는 원로가수 한대수는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라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대마초 합법화 논란 따위로 국론을 소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한마디 하셨다고 한다. 볼수록 가관이라는 말의 용례가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것인지 잠시 헷갈렸다.

1985년에 나이 스물 남짓이던 김부선은 한 시절을 풍미했던 영화 『애마부인』 시리즈의 3대 애마로 화려하게 데뷔했는데 이 『애마부인』 이라는 영화는 1982년 최초 개봉되었던 원조 『애마부인』의 가슴이 크냐 2대, 3대 애마의 가슴이 크냐 하며 입씨름을 벌이던 그 시절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의 명작이었음은 물론 이후 『파리 애마』 『집시 애마』 등 아류작들과 함께 1996년 무려 13편까지 이어졌던 시대의 명작이요 우리나라 산마이 영화의 원조격에 올려 지난 친 말은 아닐 성 싶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군사독재정권의 교묘한 우민화 통치 정책을 등에 업고 만들어 졌다고도 하는데 그래도 '뜨거운 여인의 성애(性愛)'를 주제로 삼은 영화인지라 심의를 무사통과시키려는 관계 당국도 무언가 그냥 넘기기에는 꺼림칙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원래 제목이던 '애마(愛馬)가 노골적인 성적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여 제목 변경을 지시했고 고심 끝에 영화사는 제목을 뜬금없이 애마(愛麻)로 바꾸어 심의를 통화했다는데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일까? 김부선의 대마초 흡연 구속 기사를 찬찬히 살펴보니 3대 애마 김부선이 꽤 오랫동안 대마초(大麻草)를 애연(愛煙)해왔다고 하니 그녀의 애마적 자질은 이미 30년 전에 결정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이렇게 내가 사춘기 시절 추억의 명화 『애마부인』 이야기들 들먹이는 이유는 어제 다 읽은 400여 쪽에 두꺼운 하드 커버를 가진 책 한 권 때문이니 『아편 :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내가 『아편 :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을 산 이유는 클림트(Gustav Klimt)의 그림 「다나에」로 장식한 책 표지가 멋있어서인데 이 그림은 세평 그대로 나 역시 가장 에로틱한 명화의 하나로 꼽고 있던 터라 책 제목이나 내용보다는 우선 표제에 눈이 가서 사게 된 책이니 충동구매였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아편 :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은 마약류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아직도 가장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는 아편과 그로부터 파생된 모르핀과 헤로인 등 마약에 대한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기록서이며 현재적 증언서라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에 책 읽은 감상 몇 자 남겨 보는 것이다.

지중해 연안이 원산으로 약용 및 관상식물로서의 양귀비는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재배되고 있었지만 마약으로서 양귀비의 부산물인 아편이 전해진 것은 17세기 무렵이었다 하며 아마 아편(阿片)이라는 낱말 역시 영어인 오피움(Opium)을 중국어로 음차(音借)한 것이겠지만 아편의 가장 일반적인 끽용(喫用) 형태가 흡연으로 알려진 것을 생각하면 오피움이라는 영어 낱말이 만국공용의 감탄사 '오'와 순 우리 말인 '피움'의 합성어와 꼭 닮아 있어 흥미로웠다. 유해성 면에서는 훨씬 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엄연히 불법 마약류로 분류되는 대마초를 피워 구속된 애마부인이 생각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리 대부분은 일생을 통하여 한 번도 맛보지 못할 황홀함과 비밀스러운 수렁 그리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 비참한 종말을 맞게 하는 아편, 그 아편으로 숱한 익명들이 목숨을 잃었고 또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중독의 고통에서 헤매거나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마약의 해독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20세기 초에야 아편은 불법화되었고 그로부터 마피아라 부르는 범죄집단이 본격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잘 알려진 아편전쟁의 경우처럼 이전까지 아편은 국가적 사업이었으며 더러 국가 독점 사업이 되어 세수에 결정적 기여를 했음을 물론 이와 정치가들과 관료들의 배를 불렸다. 이 같이 이 책은 굉장히 넓은 시야로 마약의 원조격인 아편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책은 가진 자, 지배하는 자 나아가 지금도 살아남아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제국주의라는 체계적 탐욕이 어떻게 마약을 이용하여 못 가진 자, 지배당하는 자를 아편에 중독 시켜왔고 야비하게 착취하여 왔는지 증언한다. 나아가 마약과 연계된 검은 커넥션이 결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엄연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증거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빈 라덴을 잡으려고 달려 들어간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아편의 산지로 이름 난 이른바 "황금의 초승달 지대"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또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19세기 사람들이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질병을 다루는 시럽에 주요 성분으로 아편을 선택할 만큼 어쩌면 그토록 아편의 유해성에 둔감했을까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과거의 무지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우리 대부분은 아편과 그로부터 파생된 마약에 관해 굳이 알 필요도 없고 그래서 무지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이 결코 마약과 무관하지 않다는 실마리를 이 책을 통하여 얻게 된다. 출퇴근 시간 틈틈이 읽은 책으로 『아편 :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은 확실히 만만치 않은 분량이라 더러 대충 읽고 넘어간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가끔 들여다 볼 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책을 마저 읽고 난 오늘 『대부』 시리즈 등 마약과 마피아를 다루는 잊지 못할 추억의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고 난 뒤라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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