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기구독하고 있는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을 배달 받았다. 요즘은 활자에 집중하기 귀찮아 그림과 그림 설명을 대충 읽어 넘긴 후 책장에 꽂아두곤 하는데 이번 달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보통 때와 달리 제법 묵직한 느낌이라 잡지를 펼치자 부록으로 커다란 세계지도가 끼여 있었다. 물론 화려한 채색 지도야말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전매특허지만 이번 달의 세계지도는 한 면에 시계지도 그리고 이면에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야경이 편집 인쇄되어 있어 절로 눈길이 갔다. 지도에 딸린 설명에 따르면 이 지구 야경은 단번에 찍은 실사가 아니라 일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반복하여 찍은 인공위성 사진을 중첩 합성하여 재편집한 사진이라고 한다. 한쪽 면 지도는 대륙의 윤곽과 국경을 표시하기 위하여 제공된 것이고 지구 야경의 이면 인공위성 사진이 기사의 포커스일 것이다. 사무실에서 책상 넓이 지도를 여덟 겹으로 포개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살펴보다 퇴근 후 집에서야 방바닥에 시원하게 지도를 펼쳐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지도를 보는 내 눈은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지역에 오래 머물렀다. 위 사진에서 하얀 색으로 표시된 지점은 야경을 밝히는 불빛으로 주요 대도시 지역이니 우선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눈에 드는 곳이 방콕임을 알겠고 조금 위쪽 중국 하이난, 해남도(海南島)는 해안선을 따라 옅은 불빛이 띠를 이루고 있어 캄캄한 밤중에도 그 윤곽이 식별되어 흥미로웠다. 조금 북쪽으로 시야를 올리면 홍콩과 중국 남부 광동성 연안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고 타이완은 대륙을 바라보는 서쪽 해안 불빛이 환하다. 그리고 거침없는 중국의 상징인 상하이 인근 또한 밤을 밝히는 불빛으로 환한데 특히 양쯔강 하류 삼각주의 윤곽이 뚜렷하고 그 규모의 방대함이 놀랍다. 한편 일본의 경우 혼슈의 동북지방, 시코쿠와 큐슈의 산간지대를 제외하고는 북쪽 홋카이도까지 전 일본 열도가 온통 밤을 밝히는 환한 불빛으로 가득하니 그 역시 오늘날 경제 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사진 위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큰 산불이 일어났던 지역을 표시하는 것이라 하며 동중국해와 동해, 북태평양 위 거대한 파란띠는 야간 어로에 나선 어선들이 바다를 밝히는 집어등의 흔적이며 이것들이 인공위성에서 분명하게 관측된다는 것은 다른 지면을 통하여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다. 대도시가 밝히는 야경은 한반도 남단에까지 환하게 이어져 있으며 그 양상은 일본이나 타이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불빛은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휴전선의 경계와 딱 일치하여 멈추어 버렸으니 의도적인 조작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휴전선 이북은 암흑의 밤이요 겨우 평양을 밝히는 불빛만이 마치 바람 앞의 등잔처럼 희미하다. 더욱 심란하게도 중국 동북지역 밤을 밝히는 불빛은 그 윤곽이 뚜렷한데 이 또한 한반도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서 멈추어 버린 것이니 평양을 밝히는 불빛이 더욱 애처롭고 가엾게 보인다.

 

나는 어떤 주의나 이념에 깊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 영역은 내 사고가 미칠 수 없는 보다 고차원적인 영역이니 보다 고차원적인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비켜 나 있는 것이 좋겠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 북쪽의 그 칠흑 같은 밤이 의미하는 바가 외세로부터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는 저항의 검은 깃발인지 아니면 독재의 아집이 빚어낸 망령의 검은 그림자인지 이해하기로 이 밤의 짧은 생각으로는 너무 버겁다. 다만 좋은 볼거리 하나를 구경한 셈치고 지도를 그냥 덮으려니 연민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올라 몇 자 남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그 연민과 분노의 대상이 대체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조차 쉽게 표현하기 어렵다. 가볍고 단순한 하루하루가 이어져 내가 감당하고 감내할 수 있는 번민들만 존재하여 그런 이야기들만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크건 작건 내 주위를 둘러싼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불빛 한 조각 찾아볼 수 없는 그 캄캄한 한밤중에서 대체 그 잘난 핵무기로 탄도미사일로 무엇을 지키자는 것이며 무엇을 지킬 수 있다 믿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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