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말미에 영화평론가 두 사람이 출연해 특정 주제를 놓고 그 주제를 다룬 추천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어제 방송의 주제는 느와르 또는 누아르 영화(film noir) 였는데, 출연자들은 누아르 영화의 원단으로 『첩혈쌍웅』과 『무간도』를 꼽고, 우리 영화로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유행어를 남긴 『달콤한 인생』을 올렸으며, 미국 영화로 『히트』(Heat)를 추천했다. 모두 내가 본 영화들인데 출연자들의 추천에 공감하며 나라면 여기에 영화 하나 더, 우리 톰 크루즈(Tom Cruise) 형님의 2004년 영화, 『콜래트럴』(Collateral)을 얹고 싶다. 둘 다 마이클 만(Michael Mann)감독이 연출한 영화고 이왕 느와르 영화 이야기가 나온 이상, 느와르 식 후까시를 잡아 표현하자면 『히트』가 20세기 느와르에 마침표를 찍은 영화라면 『콜래트럴』은 21세기 느와르의 개막을 알린 영화로 꼽고 싶다.
물론 위 이른바 느와르 영화를 두고 짐짓 거창한 평을 늘어 놓는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겠고 이런 종류의 영화에 딱 어울리는 낱말이 오락영화가 아닐까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옛 영화들을 추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이들 영화에 트레이드 마크처럼 등장하는 장면인 도시의 밤 그리고 도시의 밤을 자욱하게 적시는 안개 속을 배회하는 폼생폼사, 고독한 남자의 모습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이를테면 미명 속 어두운 밤 하늘에 걸린 전철역 그 어둠과 안개를 가르며 도착한 기차에서 한 남자가 내린다. 가로등을 역광으로 잡은 카메라 앞으로 점퍼 주머니에 손을 꽂은 남자의 실루엣이 천천히 다가온다. 영화 『히트』의 도입부에 펼쳐지는 이 장면에 대한 아재들의 감출 수 없는 로망, 그것이 우리가 느와르 영화를 추억하는 본질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20세기의 『히트』와 마찬가지로 21세기의 『콜래트럴』 역시 거대도시 LA가 무대이고 두 남자의 대결이 있으며 대결 중에 서로에 대한 존중과 교감이 있고, 그럼에도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두 남자의 고독이 있다. 변한 것은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가 10년 세월을 뛰어 넘어 탐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로 분장 하고 나타났다는 것일 뿐 고독한 킬러가 비정한 도시를 이야기할 때 택시는 여전히 안개 낀 LA의 밤거리를 달리고 있다. 탐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를 뛰어넘어 도시의 고독을 외치는 남자들은 누가 될까? 그들이 누가될지라도, 세상 모든 것이 변하게 마련이어도 변치 않는 스타일을 고집하며 영화 스크린 속에서 ‘나 안 죽었어’를 외치는 고독한 남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남자들이 존재하는 한 느와르 영화는 또 우리 앞에 등장할 것 같다. 뉴스공장을 듣고 뜬금없이 떠오른 잡생각을 정리해본 참인데 기억을 돌이켜보자니 엄청난 후까시의 배경음악으로 자욱한 째즈의 향연은 그렇다 쳐도 G-선상의 아리아는 그래도 좀 심했다 싶지만 폼생폼사, 남자의 고독에 거칠 것 또 무엇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