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너무 오래 전 일이다. 군입대 영장을 받은 후 입대 전 가볍게 여행이나 떠나자 싶어 동해남부선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 찾아간 곳이 부산과 울산 사이 동해 바다에 면한 진하해수욕장이었다. 친구 셋과 동행이었다. 해변 솔밭에 텐트를 치고 가져온 쌀로 밥을 짖고 신 김치를 버무려 진 종일 물놀이에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잠깐 해변 산책길에 나선 길에 빨간 고무 다라이에 멍게를 담아 파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우리는 각자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멍게와 초고추장, 대선소주 댓병 1병을 사 들고 텐트로 득달같이 돌아와 코펠 그릇에 소주를 따라 마시고 안주로 물컹한 멍게를 초고추장에 듬뿍 찍어 먹었다.
아, 세상에 그보다 더 맛난 음식을 맛본 적 있었던가?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멍게 파는 곳을 스쳐지나 갈 때면 나는 자연스레 미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어물전 앞의 멍게와 다시 조우하게 되었을 때는 저 멍게를 다시 먹으면 옛날 그 맛이 되살아날까 싶을 만큼 싱싱해 보였는데 여름 배앓이에 호되게 고생을 한 터라 아쉽게도 마음을 접고 말았다. 여름이 절정인 오늘 밤을 건너 며칠이 더 지나면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말 것이다. 그 선선한 바람과 함께 멍게도 제 맛을 잃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다. 내가 입대한 날짜는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그 해, 그 여름, 1988년 8월 18일이었다. 생각해보니 너무 오래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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