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2009 BR

PENTAX ME Super SMC PENTAX-A 1:1.7 50mm

 

버스 정류장과 우리 아파트 사이 반 정도 거리에 그 집, 포장마차를 빙자한 주점이 있다. 간판은 포장마차 혹은 실내포차인데 2층 다락방까지 테이블을 확장한 주점은 못해도 한번에 백 여명은 너끈히 수용할 수 있을 듯 규모가 꽤 크다. 이 집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소주 한 병, 겉절이 무침, 삶은 두부 네 조각, 맛깔 나는 김치가 주문도 하기 전에 기본으로 나오는데 기본으로 나오는 안주가 소주보다 막걸리에 어울릴 것 같아서 나는 늘 소주를 물리고 막걸리를 청해 마신다.

중년 아주머니 네 사람이 동업하는 이 포차의 영업력은 상당해서 늘 손님이 가득하다. 안주 인심도 푸짐해서 칠 천원 하는 파전 한 개 시키면 어른 둘이 먹어도 딱히 부족하다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이 집을 찾을 때 늘 혼자라는 것이다. 내 사교성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혼자서, 온전히 내 것으로 가지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술을 마시는 것까지 거리낌이 없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런 시간을 더 가지고 싶다. 여기에 제약 요소가 있는데 바로 사람들 이목이다. 이렇게 혼자 식당이나 술집 문을 불쑥 열고 들어가면 종업원조차 왠지 수상한 눈길로 나를 맞는가 하면 그 집에 있는 다른 손님의 이목이 나에게 쏠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 그 시간을 즐기는 버릇이 생긴 것은 아주 오래 전, 심지어 유년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인데 그로 인하여 겪게 되는 불편, 곧 사람들의 이목에 무심하게 된 것은 제법 나이가 들어서부터 이다. 야근으로 늦은 귀가이거나 다른 사람과 술을 마시다가 만 상황에서 돌아서는 귀가 길은 술꾼인 나로서는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어서 집 근처 그 실내포차에 혼자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이어 막걸리 한 병을 청해 마시며 그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 실내포차의 아주머니들이 돌아가며 어찌 이 야밤에 술을 마시러 혼자 여길 찾아왔는가 하는 감정이 역력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 없이 그 집을 혼자 거듭 찾아가 술을 청해 마셨고 이제 그 아주머니들은 아주 싹싹한 웃음으로 나를 맞고 자리를 안내하고 기본 안주에 막걸리 한 병을 내 온다. 나는 달큰한 김치전이나 파전에 시원한 막걸리를 들이키며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읽거나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 보거나 하는 사소한 즐거움이 깃든 편안한 마음으로 실내포차에서 하루를 닫게 된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즐겁고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 나 역시 이런 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다만, 우리가 살며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만은 아닐 것이며 좋지 않은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많고 좋은 사람들조차도 함께함이 늘 즐겁기만 하던가? 혼자 있다는 사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신다는 것에 대하여 남의 이목이 거슬린다는 것은 결국 남의 이목이지 내가 상관없다면 그만인 것이고 내가 혼자 밥을 먹는다고, 혼자 술을 마신다고 남에게 하등의 폐해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리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외롭다고 느끼는 심정, 허나 달리 생각해보면 사람들 속에 있을 때조차 우리는 얼마나 외롭고 또 외로운가?

식당이나 술집에 혼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용기와 그 안에서 둘인 셋인 넷인 혹은 여럿인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태연함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무튼 혼자 외로이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나를 보고 측은한 시선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을 둘러싼 그 많은 시선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밤을 외로움으로 몸서리 쳤던가, 사람들 속에 있을 때조차 우리는 얼마나 외롭고 또 외로운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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