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58년 개띠 여가수 한 분이 더 있다. 가수 나미(羅美)다. 본명은 김명옥이라고.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래 전부터 나미의 “주옥 같은” 노래들을 즐겨 들어왔다. 그 중 “불후의 명곡”은 단연 “슬픈 인연”. 절창이라는 말을 어디에 붙여야 한다면 가수 나미에게, 그녀가 부른 “슬픈 인연”에게 붙인다. 명곡 중에 명곡이라 역시나 리바이발 해서 부른 가수들이 많은데 나미의 노래 외 누구의 노래도 내 귀에 들어 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나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레게 머리에 힙합 춤을 추면서 “인디언 인형처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일 것이다. 이 노래로 1990년 방송사에서 주는 가요대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내 선곡 리스트에는 “인디언 인형처럼”이 없다. 대신 내 선곡 리스트에는 “미운 정 고운 정”이 있고 “마지막 인사”가 있고 또 “슬픈 인연”이 있다. 앞의 두 곡은 흔히 말하는 뽕짝의 원단이며 “슬픈 인연”은 이제는 이 땅에서 찾아 들을래야 찾아 들을 수도 없는 스탠더드 팝(standard pop)의 전형이다. 이런 양식의 곡을 좋아하는 아재는 옛 노래만 듣는다. 아재라서 옛 노래만 듣는 것이 아니라 발표되는 좋은 곡이 없어서 옛 노래만 듣는다. 1985년으로 기억된다. 가수 나미가 발표한 “빙글빙글”이라는 노래는 그 시절 샤이키 조명에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소풍 가는 날, 고등학생들의 어깨에 얹은 카세트 플레이어에서는 “빙글빙글”이 꼭 나와줘야 했고 이 노래가 나오면 엉거주춤을 꼭 따라 춰 줘야 했다. 그리고 허접 꼴불견 나인티 나인티 나인의 붐이 아니고, 제대로인 진짜 백 댄서 붐붐과 함께 “인디언 인형처럼”을 부르며 토끼춤을 유행시킨 사람도 58년 개띠 여가수 나미다. 그녀의 앨범 디스코그래피를 슬쩍 훑어만 봐도 대중 가요를 부르는 가수로 그녀가 얼마나 넓은 대중 가요의 영역을 소화해냈는지, 얼마나 재능 있는 가수였는지 엿볼 수 있다. 인터넷은 시청각 정보로 채워진 공간인데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울 것 같은 인터넷 강국 이 나라의 인터넷 정보는 한 물간 가수를 대접하는데 인색해서 옛날 한 때 “가수왕”의 반열에까지 오른 나미에 대한 정보는 드물다. 구글에서 왕년의 영어권 인기 가수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마치 엄마 오실 때 줄줄이 아빠 오실 때 줄줄이, 줄줄이 사탕처럼 문자 정보며 영상 정보들이 튀어 나오는데 이 정보들은 한 물간 네티즌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 강국에서는 다루지 않는 한 물간 정보들일까? 58년 개띠인 나미는 1967년에 처음 가수 활동을 시작했단다. 그 한 줄 정보로 유추하자니 아주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엄청 잘 불렀고 직업 대중 가수로 나서기 쉬운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을 듯싶다. 책 가방 끈이 세상살이의 연줄로 통하는 이 땅에서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기가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을 성 싶기도 하다. 키가 158cm라고 하는데 나이를 생각하자면 작은 키는 아니다. 오래 전 “불후의 명곡”을 자주 시청했었다. 히트곡을 많이 낸 대중 가수를 초대해서 소개하는 가진 프로그램인데 나미가 빠져서는 안되었을 것이다. 가수 나미의 출연 방송을 참 포근한 마음으로 시청했다. 방송 도중 진행자가 나미의 지난 이력을 소개하더니 1990년 “인디언 인형처럼”을 발표하고 인기 절정의 순간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셨는데, 왜 그러셨냐 물었더니 그때 이미 쉰을 넘긴 나미, 모기 같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나는 내 한계를 알았던 거지”라고 대답했다. 몸 개그라도 해야 뜨는 방송이기에 그런 진지한 대답은 들려서도, 들어서도 안되었을 것이다. 진행자는 화제를 돌리고 말았지만 내 귀에는 방송이 끝날 때까지 그 대답만 자꾸 오버랩 됐다. 유명인 기준으로 조용하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수 나미는 은퇴 후 조용하게, 평범하게 잘 살아온 듯싶었다. 그런 나미의 모습을 자주 보았으면 좋겠다 싶지만 어쩌면 이 분, 이 어처구니 없는 세상에, 세월 속에 “아름다운 퇴장”이 무엇인지 아는 분이겠거니 싶기도 했다.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살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또 그 길을 스스로 택해 살아간 것일 게다.

 

건전한 표현으로 우리들이 “이성에 눈을 뜬 시기”에 천연색 컬러로 우리들 눈 앞에 펼쳐진 이성의 로망은 그 시절 트로이카 여배우들이었고, 애마들이었으며 또 여가수들이었다. 게으른 탓에 오래 전에 플레이어에 담아둔 나미의 노래를 듣다가 오늘 선곡을 바꾸기 전에 나의, 우리들의 “누나” 이야기 한 자락 더 남겨 놓자 싶어 내가 읽기에도 허접한 또 읽어 주는 사람도 별로 없을 장광설을 오늘도 늘어 놓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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