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쇠라│분 바르는 여인│1889-1890│런던 코톨드갤러리
Georges Seurat, Jeune femme se poudrant, The Courtauld Gallery, London, UK
2013. 4. 23.
우리는 회화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품 속에 묘사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그린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19세기 유럽 회화 작품들을 좋아하며 그 그림들 속에 담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긴 책을 읽어 왔다. 그 시대 이전의 회화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기법상 차이는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소재의 일상성과 따스함 등은 19세기 서유럽 미술의 특징이다. 하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 시대 회화 작품 중에서 유독 눈길이 잘 가지 않던 작품들이 있었는데 쇠라(Seurat, Georges Pierre)의 그림이 그랬다.
쇠라│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1884-1886│미국 시카고미술관
Georges Seurat,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Art Institute of Chicago
쇠라는 점묘파라는 미술사조의 대표적 화가다. 점묘파들에게 그림은 예술이면서 동시에 과학이어서 그들은 색채학과 광학이론을 배웠고 연구하여 그것을 회화에 적용했다. 당시 화가들은 물감을 섞어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물감을 섞을수록 색은 점점 어두워져서 그림이 칙칙해진다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의 화가들은 물감을 섞지 않고 몇 가지 색을 물감 원색 그대로 잘게 캔버스의 표면 위에 칠해두면 사람의 망막에는 혼합된 중간색이 나타나게 된다는 병치혼합기법을 활용해서 이 딜레마를 극복했다. 모네는 붓을 짧게 툭툭 끊어서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는 병치혼합법을 이용했고 고흐도 긴 곡선을 병치하는 방법으로 밝은 빛에 노출된 소재의 밝은 색상을 얻었다. 이 병치혼합법이 극단화되면 마치 붓끝을 이용해서 미세한 모자이크 조각을 이어 붙이듯 물감을 칠해야 하는데 그 기법을 실제 회화에 적용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점묘파였다.
쇠라 이외에도 시냐크(Signac)가 이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고 이들 유파를 선대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분리하여 신인상주의로 미술사에서 다루고 있다. 쇠라는 세잔과 더불어 20세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연 화가로 대접 받는다. 하지만 쇠라의 명성에 비해 쇠라가 완성작으로 남긴 작품이 많지 않다. 이것은 그가 서른 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런 발병으로 사망한 탓도 있지만 점묘기법으로 큰 크기의 유화를 그린다는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는 이유가 더 크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그랑 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한편을 그리기 위해 그는 무려 열 네 점의 습작 유화를 만들었으며 그런 방식으로 작품 한편을 세상에 내놓는데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알아고 있던 쇠라의 대표작들에게 나는 왜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의 작품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읽어 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표정을 알 수 없고 게다가 어느 한 순간 시간의 흐름이 딱 멈추어 버린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림 앞에 귀를 대고 있어도 거기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랑 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와 함께 쇠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라는 쇠라의 작품이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있는데 어릴 때 미술교과서에서 본 이 대작을 본 순간조차 별 감흥이 없었다.
쇠라│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1884│런던 내셔널갤러리
Georges Seurat, Bathers at Asnières, National Gallery, London
그런데 이런 쇠라의 작품이 아주 달리 보이던 때가 있었다.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가까운 코톨트갤러리에 「분 바르는 여인」 쇠라의 작은 작품 한 점이 걸려 있었고 거기에는 예의 그 점묘 기법으로 얼굴에 파우더를 칠하는 보통 그림 속에 등장하는 예쁜 모델이라고 결코 봐주기 어려운 여인이 담겨 있었다. 작은 그림의 색조는 밝고 따스했으며 무표정하게 얼굴에 분칠하고 있는 여인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고 또 그런 표정이어서 친근했다. 이 여인은 처음 쇠라의 작품 모델이었다가 후에 쇠라와 함께 살게 되는 마들렌(Madeleine)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다. 쇠라와 마들렌은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듬해인 1891년 쇠라는 폐렴으로 숨을 거두고 2주 후 아이도 같은 증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소품이라 불러도 괜찮을 작은 쇠라의 그림을 보는 내내 나는 한 여인이 분을 칠하고 있는 순간이고 이것이 점묘파의 대가 쇠라의 작품이라는 생각보다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사랑을 나누었으며 어떻게 살아갔을까 궁금했다. 쇠라의 작품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