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 │ 폴리베르제르의 바 │ 1882 │ 런던 코톨드갤러리

Édouard Manet · Le Bar aux Folies-Bergere · The Courtauld Gallery, London

2013. 4. 23.

 

18세기 프랑스 시민 혁명은 절대왕정을 무너뜨렸고 산업혁명은 거대 도시 파리를 일으켜 세웠다. 혁명의 시민들은 파리의 궁전들을 접수하고 파리는 공화국의 수도로 산업의 은혜를 받아 끊임없이 자기 증식을 이루었다. 혁명전야, 절대 왕권의 첨탑이었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던 시민들에게 그 거대한 감옥에 고작 죄명조차 알 수 없는 열 여섯 명의 죄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혁명과 반혁명은 피에 굶주렸다. 수많은 목숨이 공개 처형의 단두대 기요틴 위에서 목이 잘린 채 사라졌고 혁명과 반혁명의 여진은 끔찍한 전쟁이 되어 유럽 대륙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러시아에서 그리고 워털루에서 패했다고 기술한 지난 혁명의 역사책 행간에는 그 전쟁의 와중에 목숨을 잃은 수백, 수천만 명의 피 비린내가 베어 있음을 기록하는 데에는 인색하다. 그러나 혁명과 전쟁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다시 살아가게 되어있다. 파리는 산업혁명의 수혜로부터 재건되어 기반 시설들이 건설되고 구획이 정리되었으며 혁명을 성취한 시민들을 위해서 공원이 들어서고 오페라 거리가 들어서고 그 거리로 화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밤이면 오페라 거리를 밝히는 휘황한 불빛들이 카페에서, 바에서 새어 나오고 카페와 바를 밝히는 샹들리에 아래서 압생트를 마시며 시민들은 예술과 공연을 이야기했다.

 

1881년 어느 날 밤, 파리 폴리베르제르의 바에서는 잘 차려 입은 시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을까? 몇 년 후에 열릴 파리만국박람회와 그곳에 세워질, 그들이 이룩한 산업의 혁명을 찬미할 철강제로 만들 거대한 에펠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을까? 그날 밤 폴리베르제르의 바 스탠드의 앞 자리에는 나이 마흔 아홉의 병든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가 앉아 바의 스탠드에 서있는 여급 쉬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1832년 부유한 법관의 자제로 태어난 마네는 처음에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아카데믹한 미술 교육을 받으면서 화단에 입문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등 대개 옛 명화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소재의 선택이나 표현의 형식에 있어 그는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했고 탁월한 색채 구사력과 평면적인 색감의 도입은 그를 동시대의 화가들 중 독보적 존재로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특징 때문에 그의 작품은 당대 평론가들에게는 조소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외롭지 않으면 천재가 아니다.

마네 │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 1859년경 │ 덴마크 코펜하겐 클립토테크미술관

Édouard Manet, The Absinthe Drinker, Ny Carlsberg Glyptotek, Copenhagen, Denmark

 

1859년 스물 셋의 나이에 살롱전에 처녀작을 출품했지만 낙선하고 말았다. 이후 마네는 평생을 살롱전을 중심으로 한 파리의 정통 화단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그가 화단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1883년 쉰 하나의 나이로 사망하기 두 해 전의 일이었다. 당시 파리의 화가들에게 살롱전은 작품을 전시하고 발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이었고 살롱전에서의 입선은 화가로서 정통 화단으로부터 인정 받고 또한 그림을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기회였다. 마네가 출품한 작품은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살롱전에 낙선한 이유 중 하나는 술로 인해 몰락해버린 사람을 소재로 삼아 사회윤리를 해쳤다는, 지금으로 보아서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화단 분위기는 정치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사회의 주류로 성장한 시민들의 호사로서 봉사하는 그런 작품이어야 했다. 특히 아름다운 신화나 역사적 사건, 신체 비례가 완벽하며 밝고 화사한 누드화는 시민들의 거실을 장식하는 그림으로 합당한 것이었고 그런 그림들이어야 평단의 호평과 살롱전 입선의 영예를 누릴 수 있었다. 마네는 평생 살롱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한편으로 그런 시류와는 철저히 다른 그림을 그려 나갔고 오늘날 서구 미술의 걸작 중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이 발표되자 심지어는 뻔뻔스럽게도 옛 거장의 작품 끌어들여 통속적인 장면을 만들어 고전을 욕보였다는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마네 │ 풀밭 위의 점심식사 │ 1863년 │ 파리 오르세미술관

Édouard Manet, The Luncheon on the Grass (Le déjeuner sur l'herbe), musée d'Orsay

 

그렇게 그의 관심은 고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원하는 그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민들 자체였던 것이며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현대성과 사실주의 미술이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네는 화단의 선배로서 인상주의(Impressionnisme) 화가들로 불리던 일단의 신진 화가들을 후원하고 평생 친밀한 교유 관계를 유지했지만 인상파의 그룹전에는 한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비슷한 이름으로 혼란을 주는 젊은 모네(Claude Monet)가 광선과 풍경에 천착해 들어가는 사이 마네는 변함없이 도시와 도시의 밤, 도시가 주는 모든 새로운 광경에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가지고 이를 화폭에 옮겨 나갔다. 그 시기 현대적 도시계획으로 파리는 시민들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었다. 잘 가꾸어진 공원으로의 야유회, 콘서트가 벌어지는 카페의 저속한 구경거리를 찾는 발길은 시민들의 일상이 되어 파리는 쾌락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거대한 유흥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 유흥장에는 매춘이 현저하게 늘어 화가와 소설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기 주제가 되었다. 당대와 당대의 사람들에게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가진 마네는 일찍부터 매춘부들을 그의 화폭에 담기 시작했고 그 이유로 부도덕하다는 비난과 함께 거듭되는 살롱전의 낙선을 경험했다. 마흔 아홉이 되던 1881년 마네는 그토록 바라던 살롱전에 입선하여 뒤늦은 영광을 얻었지만 육신은 이미 병마에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흔적을 찾기 쉽지 않은, 젊은 날에 얻은 매독의 뒤늦은 발병 때문이었다. 그렇게 병마에 시달리며 만든 마네 마지막 대작이 「폴리베르제르의 바」(Un bar aux Folies-Bergeres)였다.

 

바의 여급 등 뒤로 벽면을 가득 매운 커다란 거울에는 샹들리에 아래 바에 모여든 파리의 시민들로 가득 차 있고 화폭의 오른쪽에는 여급의 등과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중절모를 쓴 신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각도로는 측면의 신사를 바라보아야 할 그녀의 모습은 시선을 놓은 채 정면의 모습으로 화폭에 담겨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역시 마네는 원근법을 알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다는 평단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깊고 그윽한 눈 위를 가로 지르는 쌍꺼풀, 발그스레한 뺨, 돌출된 가슴, 코르셋으로 한껏 조인 가느다란 허리와 이 때문에 더욱 돋보이는 풍성한 엉덩이 윤곽의 여급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거울에 담긴 중절모 신사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었을까? 거울 속에 등을 보이며 그 신사에게 한껏 가까이 다가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고 있는 폴리베르제르 바의 여급은, 그러나 마네의 화폭 정면에서는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떨구어 휑한 시선 놓고 망연히 슬픈 표정을 짖고 있다. 병고 속에서 마네는 보다 작은 크기의 완성도 높은 습작을 먼저 그린 다음에 전문 모델을 쓰지 않고 폴리제르베르의 여급을 스튜디오로 직접 불러들여 심혈을 기울여 「폴리베르제르의 바」를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전 해 살롱전의 영예를 안고 근대의 질환인 매독으로 숨져가던 마네가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세기말로 내닫는 19세기 부루주아 사회를 향해, 근대 미술을 향해 내놓은 마지막 대작으로 남았다.

마네, 1874년

Manet's portrait by Nad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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