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렉 · 물랭 루즈 입구의 잔 아브릴 · 런던 코톨드갤러리
Henri de Toulouse-Lautrec · Jane Avril in the Entrance to the Moulin Rouge · 1892 · The Courtauld Gallery, London, UK

 

런던 코톨드갤러리의 로트렉 전시포스터

Courtauld Gallery, London, UK

 

2013. 4. 23.

 

유럽 미술사에 톨레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이라는 사람 이름이 남아 있다. 19세기 말 후기인상주의로 분류되는 화파의 대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신체적 장애로 자신을 태워 그림을 남기고 서른 일곱의 나이에 사망했다. 로트렉은 프랑스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 사고로 큰 골절상을 입은 후 상체는 정상적으로 성장했으나 하반신 성장은 멈추어 버려서 길지 않았던 평생을 장애자로 살아야 했다. 부친은 그를 가문의 수치로 여겼고 그는 가문의 울타리에서 벗어 났다. 때문에 가끔 그림에 남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파자하여 로트렉(Lautrec)이 아닌 트레클로(Treclau)라고 적어 넣었다고 한다.

 

다리가 짧아 그림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었던 로트텍은 어린 시절 동물 그림 등을 열심히 그리면서 나이를 먹었고 열 여덟이 되는 해에 고향 알비를 떠나 파리로 갔다. 코르몽(Fernand Cormon)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며 춤과 노래와 술과 매춘의 밤을 찾아 환락의 물랭 루즈로, 몽마르트르의 사창가로 거처를 옮겼는데 거기서 카바레, 뮤직홀, 매음굴 등에 출입하며 신랄한 풍자와 기지로 창녀와 무희와 가수와 그들을 찾는 고객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의 걸작 물랭 루즈의 무용수 잔 아브릴(Jane Avril), 지적이면서도 화려한 춤으로 이름난 정열의 화신이었던 그녀와의 로맨스는 유럽 근대 미술사의 뒷 이야기로 소개되고 있다. 화가로서 그는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지고 있었고 데생 기법이 뛰어났으며 유화 외에 파스텔, 수채, 석판에도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했다. 신체적 결함이 가져온 콤플렉스 때문이었던지 과도한 음주로 세월을 보내면서도 피사로, 고갱, 드가, 쇠라 등과 작품활동을 했고 파리 사교계의 이단아로 취급 받으면서도 세상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애정 어린 눈길로 화폭에 담았다. 그가 남긴 많은 명작의 소재들이 세탁부나 매춘부와 같은 자신 주변 사람들의 사실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로트렉은 파리에서 고흐(Vincent van Gogh)를 만났다. 1886년 고흐 역시 파리로 거처를 옮기고 코르몽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는데 거기서 둘의 짧고 인간적 교유를 가졌던 것이었으니 그때 로트렉의 나이 스물 셋, 고흐의 나이 서른 넷이었다. 로트렉은 가난한 고흐에게 화대를 줘가며 함께 사창가에 드나들기도 했다고 한다. 로트렉은 자신이 그러하듯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고흐의 천재성과 그 그늘을 간파했을지 모르고 그래서 기피인물 취급을 당하던 고흐와 함께 어울릴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화가는 인물 혹은 사물을 그저 보고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 혹은 인물의 이면에서 소리 없이 일렁이는 것들의 속성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작품에 녹일 수 있어야 한다. 고흐 스스로 그린 귀기 마저 느껴지는 자화상에만 익숙하던 눈으로 로트렉이 파스텔로 그린 고흐의 측면 초상화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따뜻한 모습의 고흐가 있었던가 싶다.

 

로트렉과의 짧고 우정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화가들의 고향 파리 몽마르트르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파리를 떠났고 서른 일곱의 나이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거두었다. 살아 생전 결코 세상의 넉넉한 시선을 받아 보지 못하고 아무리 잘 보아주려고 해도 사회적 친교의 대상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괴팍한 고흐가 넌덜머리가 나서 로트렉이 고흐의 시골행을 부추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끔 고흐와 같은 인간형이 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나 그 내 자답은 늘 부정적이다. 그렇게 고흐는 혼자 세상을 떠났다. 무절제한 생활로 자신을 태워가던 로트렉 역시 재만 남은 허약한 육신을 가누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에 의한 건강악화와 정신착란으로 고통 당하며 1901년 이승에서의 생을 접었다. 그의 나이 역시 서른 일곱이었다.

 

로트렉은 석판화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다. 석판화는 인쇄기법과 결합되어 여러 판을 찍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로트렉의 석판화는 당시 파리의 밤 무대 물랭 루즈의 광고전단으로 유명했다. 로트렉의 유화 작품 중 물랭 루즈의 최고 인기 무용수 잔 아브릴의 모습을 담은 「물랭 루즈 입구로 들어가는 잔 아브릴」이라는 작품이 런던 코톨드갤러리(Courtauld Gallery)에 소장되어 있어 그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컸는데 세 차례나 코톨트갤러리를 방문했음에도 방문할 때마다 외부 대여 중이라 보지 못했다.

 

마지막 코톨트갤러리 방문 때 그간 코톨드갤러리에서 연 특별전의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거기 로트렉을 테마로 한 특별전 포스터가 있어 그것으로 로트렉의 작품을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요즘처럼 멀티미디어 통신이 발달한 시대, 고해상도의 회화 작품 파일을 별 힘들이지 않고 감상하고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시대에 꼭 미술관에서 그 작품을 직관해야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직관하겠다고 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면 언제가 내가 런던을 다시 찾아야 할 이유, 그 일정 중에 코톨드갤러리를 다시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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