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야경으로 알려진 프란스 반닉 코크 대장이 이끄는 네덜란드 시민군 집단 초상화, 1640년경,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The Militia Company of Captain Frans Banninck Cocq known as Rembrandt's Night Watch Rijksmuseum Amsterdam, the Netherlands

오늘날 정치경제체제로서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는 네덜란드에서 탄생하여 영국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만개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중세 시대를 거치고 있을 때 네덜란드에는 왕도, 봉건 영주도, 기사도, 농노도 없었으며 북해와 맞닿은 네덜란드 해안 저지대에 모여든 사람들은 제방(dam)을 쌓아 농지를 개간한 자영농민들이었고 그 지역에 들어선 도시에 모여든 사람들은 어민들이었으며 이웃 도시들과 교역하던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현대적 의미의 시민들이었다. 중세 유럽의 한 축을 점하고 있던 교회 권력으로부터의 속박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16세기 유럽 전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신속히 개신교로 갈아탔다. 한편 유럽 여러 제후국들과 왕가들이 전쟁을 벌이거나 혼인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국경선 긋기를 하는 동안 네덜란드는 스페인이 중심이 되는 합스부르크왕가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구 종교 카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스페인 지배자들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세금을 뜯고 개신교를 억압하자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네덜란드 사람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근 100년간의 스페인과의 치열한 전쟁 끝에 1648년 독립을 이루게 된다. 이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이끈 중심인물은 독일 귀족 출신의 오라녀 공 빌렘(Willem van Oranje)으로 오라녀 공은 신생 독립왕국 네덜란드의 왕으로 옹립되어 오늘날 네덜란드 왕실인 오라녀-나사우(Oranje-Nassau)가의 시조가 될 뿐 아니라 그의 자손은 영국 공주와 결혼하여 영국왕 윌리엄 3세(William III)로 등극하게 된다. 오늘날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색깔이 네덜란드어로 오라녀(oranje) 영어로 오렌지(orange)색인 이유, 네덜란드 국가 대표 축구팀이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는 이유다.

네덜란드 여행 중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사진으로 담아온 「야경」(夜警) 즉, 야간 순찰(Night Watch)로 알려진 작품은 위와 같은 네덜란드의 역사가 렘브란트라는 대가가 만나 탄생한 걸작이다. 유럽 그 어느 지역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네덜란드에서는 한 개인이 아닌 집단을 묘사한 집단 초상화가 유행했는데 이는 그 시대 네덜란드라는 나라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스페인과의 독립전쟁 중 네덜란드의 주력 군대는 바로 시민들의 참전으로 구성된 시민군이었고 이 시민군의 지도자 프란스 바닉 코크(Frans Banninck Cocq)는 독립 전쟁이 한창인 와중인 1640년경 최고 화가 렘브란트에게 그와 시민군을 담은 집단 초상화를 의뢰하였다. 의뢰는 받은 렘브란트는 대낮에 훈련을 위해 무기고를 출발하는 시민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는데 이 작품의 제목은 애초에 야경 또는 야간 순찰과는 아무 상관없는, 굳이 제목을 달자면 “프란스 반닉 코크 대장이 이끄는 시민군(The Militia Company of Captain Frans Banninck Cocq)”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완성된 작품이 길이 5m가 넘는 대작이라 시민군 본부에 벽면에 걸기에 크기가 너무 컸다는 점과 시민군 본부건물 난방을 위해 석탄을 때는 통에 작품에 그을음이 껴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시민군은 군인다운 방식으로 작품 크기 문제를 해결했는데 작품 양쪽을 냉큼 잘라버렸고 그을음이 껴 가던 작품은 세대가 세대로 이어지는 세월을 거치자 마치 밤 풍경으로 보여 사람들은 이 작품을 두고 군대의 「야경」, “야간 순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영국 생활 중 자주 찾았던 나라가 네덜란드인데 지난 포스팅 중에 네덜란드와 관련된 글이 드물어 요즘 옛 사진들을 다시 들춰내 정리 중이다. 네덜란드라는 나라의 풍경은 그 자체로 꽤 독특하고 매력적이었지만 내가 네덜란드를 찾았던 큰 이유 중 하나는 16세기, 17세기 이른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렘브란트, 할스, 베르메르와 같은 네덜란드 대가들의 회화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였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Amsterdam), 헤이그에 있는 왕립미술관(Mauritshuis, The Royal Picture Gallery), 헤이그시립미술관(Gemeentemuseum, Den Haag), 하를럼의 프란츠할스미술관(Frans Hals Museum)에서 대가들의 작품 실컷 구경했다. 영문도 모른 채 영국에 가서 영어는 늘지 않고 그림만 실컷 구경하러 돌아다닌 짝이다. 렘브란트의 「야경」은 내가 그 원작품 앞에 서서 감상하리라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부터 좋아했던 그림인데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5m 가까운 대작 앞에서니 압도적이라는 느낌 외 다른 표현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거기 네덜란드라는 나라 그 시대의 역사 그리고 대가의 예술성이 모두 응축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니 고흐 작품에 대한 나의 애호에도 불구하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바로 앞 광장에 자리 잡고 있던 반고흐미술관(Van Gogh Museum)은 구경하지 않았는데 고흐의 걸작이라면 런던이나 파리에 더 많지 않는가 생각한 나름 헛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암스테르담에 다시 가봐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야경이 원래 걸려 있던 과거 암스테르담 시민군 건물, 현재 둘런호텔

Doelen Hotel, Amsterdam, the Netherlands

2012. 8.

1640년 경 렘브란트의 야경이 완성된 후 작품이 처음 걸렸던 암스테르담 시민군 부대 본부 건물로 암스테르담 여행 중 찍은 사진이다. 오늘날에는 둘런호텔이라는 5성급 호텔로 변모해있다. 영문 위키 사전에는 이 건물을 "Kloveniersdoelen"이라 쓰고 "musketeers' shooting range"라는 주석을 달았는데 굳이 번역하자면 화승총 부대의 사격 훈련장이라는 뜻일 것이다. 「야경」은 1715년 암스테르담 시청 건물로 옮겼는데 워낙 큰 작품이라서 암스테르담 시청에 작품을 걸기가 마땅찮아서 안타깝게도 원작의 윗 부분 일부와 오른 쪽 일부가 잘려나가 버렸다는 것 역시 영문 위키사전이 전하는 소식이다. 사진 찍을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찍은, 한때 야경이 걸렸던 둘런호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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