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풍경│귀스타브 쿠르베│1865년│독일 퀄른 발리프-리하르츠미술관
한가림디자인미술관,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전
2016. 1.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걸린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의 대작 「오르낭의 매장」을 봤다. 파리 여행 중 짧은 일정 때문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오르세 미술관 전시 작품을 대충 둘러볼 수 밖에 없었는데도 가로 길이 7m에 가까운 이 대작이 넓은 관람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압도적인 장면은 제법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뜬금 없는 번역이 굳어져 버린 탓에 자칫 오르낭이라는 사람의 매장 장면을 담은 작품으로 오해될 수 있는 「오르낭의 매장」은 정확하게는 오르낭(Ornans)이라는 마을에서 행해진 이름 모를 사람의 장례 매장 장면이다. 압도적 크기와 정교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어느 고관대작도 아닌 작은 시골 마을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의 매장 장면이 그 시대 프랑스 회화의 대표작으로 대접 받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것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죽음이라는 것이 엄연하며 평등한 것이라는 '사실'을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람 이름은 오직 화가인 쿠르베뿐이다. 오르낭은 스위스와 가까운 프랑스 동쪽 내륙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쿠르베의 고향이다.

오르낭의 매장 │귀스타브 쿠르베│1850년│파리 오르세 미술관

 

스위스와 국경을 접한 프랑스 동부 프랑슈-콩테지방의 오르낭에서 1819년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쿠르베는 스무 살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갔지만 곧 직업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렘브란트 등 이전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고 고전파 화가로 유명한 장 자크 루이 다비스의 문하생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한 쿠르베는 아카데믹한 회화의 기본기를 충실히 익혔지만 작품 소재 선택에 있어서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는데 이는 사실주의(寫實主義)로 분류되는 근대 회화의 혁신적 사조로 발전하게 된다. 그의 작품에 대한 생각은 다음으로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다. "누가 성경 속의 천사를, 신화 속의 신을 보았단 말인가?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 그리겠다." 사실(寫實)에 대한 인상(印象)을 강조한 인상주의 역시 사실주의의 연장선에서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프랑스 내륙 산간 지역 출신인 쿠르베는 이십 대 중반이었던 1845년 노르망디에서 바다를 처음 보았는데 바다를 처음 보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던지 '바다를 보고 몰아지경에 빠진 것 같았다'는 그때 심정을 담은 고향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 그 감동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후 쿠르베는 노르망디 지방에서 스스로 바다풍경(paysages de mer)이라 부른 작품들을 많이 남기게 되는데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풍경으로 본 인상주의』전에 소개된 쿠르베의 「바다풍경」이 그 중 한 작품이다. 노르망디의 해변과 바다는 여러 인상파 화가들이 즐겨 담은 소재인데 특히 클로드 모네와 외젠 부댕의 작품이 많이 알려져 있으며 쿠르베 역시 이 후배 작가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쿠르베는 역시 쿠르베였다. 쿠르베는 이 작품을 그리면서 의식적으로 모든 부수적인 대상들을 제거한 채 오직 해변과 바다, 구름 그리고 하늘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바다를 보고 느낀 감동을 회화로 표현하는데 어떤 부수적인 요소들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바다 밖에 없고 혹은 바다만 있는 쿠르베의 「바다풍경」 앞에서 대가(大家)를 가르는 척도는 스킬이 아니라 사상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 아트 로그 > 어쩌다 전시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닉 나이트 사진전  (0) 2020.05.20
김득구를 아십니까?  (0) 2020.05.18
회화의 힘  (0) 2020.01.28
사북과 고향  (0) 2020.01.13
샤갈의 겨울  (0) 2020.01.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