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담아온 옛 사진 파일들을 한번씩 열어보면 내가 찍은 사진이 맞나 싶은 것들이 있다. 영국 촌 동네 서퍽(Suffolk)하고도 더욱 이름없는 한촌 캐벤디시(Cavendish)에서 찍어온 이 사진도 그런 사진들 중 하나다. 사진의 디지털 정보를 읽어보니 오후 두 시경에 찍은 사진인데 해 그림자가 벌써 길다. 영국의 1월이면 오후 세시에 슬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그보다 더 이 사진이 내가 찍은 내 사진 아닌듯한 이유는 영국의 1월에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보기 쉽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영국에서 담아온 못 찍은 사진 속에 어둡고 길던 영국의 겨울과 그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던 어느 맑은 겨울 오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수연
어느 맑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