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 부산시립미술관
2019. 12. 29.
재개발예정지구에 있는 낡은 옛집의 주거환경이 해가 다르게 나빠져서 그곳에 홀로 살고 계신 노모를 뵐 때마다 마음 무거웠는데 지난 달 옛집을 처분하고 옛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었다. 지난 주말에 매매거래 후 뒷정리와 어머니 이사에 조금 도움이 될까 하여 다시 부산을 찾았다. 사실 지난 달에는 연말 연휴 기간 중 가까운 해외여행이라도 할까 하였는데 결국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는 하나 이제 노모께서 보다 쾌적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되었기에 마음 편하다. 부산에 내려간 첫 날에는 어머니,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이튿날에는 가벼운 산행을 할까 계획하였는데 마침 겨울비가 촉촉히 내려 산행대신 부산시립미술관을 방문했다.
지금 부산시립미술관이 들어선 자리에 내 어릴 때는 수영비행장이 있었고 내 자랄 때는 거대한 컨테이너 야적장이 있었으며 내가 부산을 떠난 뒤에 거대 복합 전시공간인 벡스코가 들어서고 그 동네 일대가 센텀시티라는 신도시로 변해서 뜬금없게도 반여동에 들어선 오래된 아파트마저 센텀 무슨 아파트로 개명을 한 모양인데 벡스코 제1전시장과 제2전시장 사이에 자리잡은 부산시립미술관은 과연 신도시에 들어선 미술관답게 아주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고풍스러운 멋은 없어 아쉬운 점이 있었고 전시 중인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작품들 역시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린 작품들이 많았으나 작품의 수준을 놓고 보자면 서울시립미술관과 비교하기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미술관 사이 조경을 잘 해놓은 센팀시티의 가로 공간에는 동백을 비롯하여 난대성 식물들이 이 엄동 겨울에도 푸른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겨울에 부산을 찾을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기차에서 내릴 때 느끼는 부산 공기는 확연히 따뜻하다. 쿠로시오해류의 줄기인 쓰시마해류와 동한해류의 영향을 받아 부산 날씨는 겨울 추위가 덜해서 더러 부산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서울을 떠나 부산에 정착하여 살 수 있을까?’ 벡스코에 자리잡은 부산시립미술관과 전시작품들을 구경하고 어머니 계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혼자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자답이 그리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자문치고는 쉬운 질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