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6.
김포 문수산
지난 주 토요일 친구들과 김포 문수산 산행을 다녀왔다. 마침 년 중 가장 맑은 날이다 싶게 하늘이 쾌청해서 문수산성 성벽 위를 따라 난 등산로 위에 떨어지는 햇살은 따가웠어도 가파른 산등성이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은 청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문수산이라는 이름은 산이 품고 있는 고찰 문수사(文殊寺)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문수산이 품고 있는 문수산성은 강화도를 마주보고 있는 김포반도 끝자락에 자리 잡은 산성으로 해안선에서 성벽이 시작되어 문수산 등성이를 따라 해발 376미터 문수산 정상의 장대까지 성벽이 이어진 포곡형 산성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땅에 흔적으로 남아있는 산성 대부분이 산세에 의지하여 성벽을 쌓은 형태인데 특이하게 문수산성은 복원된 남문과 북문 모두 해안에 자리 잡고 있어서 형태상으로는 평저성과 산성의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수산성 해안 성벽은 1866년 프랑스 군대가 자국 천주교 선교사를 살해했다는 구실로 우리나라를 침략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의 공격으로 무너져 내렸다고 안내에 쓰여 있는데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화강암 덩어리로 석축을 쌓은 성이 단번에 무너져 내릴 리는 없겠고 다만 오랜 세월이 해안의 성벽을 흩어놓은 것이리라.
서울에서 3000번 시외버스 타고 강화대교 바로 앞 성동검문소 정류장에 내리니 가까이 문수산성 남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고 해안 제방을 따라 둘러쳐진 철책선과 나란한 길을 제법 걸어 북문에 도착 성벽을 따라 난 등산로를 향해 산행을 시작했다. 도로변에 서있는 안내판을 읽으니 이 길이 세계에서 가장 잘 무장된 군대가 양쪽에서 버티고 선 비무장지대 DMZ를 따라 이어지는 평화누리길 제2구간이라 한다. 문수산의 해발고도는 376미터인데 높이가 만만하게 보여도 문수산은 해발고도 제로에서 시작되는 산이니만큼 산길 경사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세파에 과식에 음주에 찌든 무거운 몸뚱아리 저질 체력으로 가파른 산길을 걷던 우리 일행은 산 중턱 즈음에 이르자 숨이 턱까지 차올라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는데 문수산 중턱에서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 풍경은 산행의 고됨을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장관이었다. 문수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물줄기가 한 곳에서 만나 서해 바다로 흐르는 강화만이다. 강들은 억겁의 세월 동안 끊임없이 비옥한 충적토를 실어 날라 하구에 강화도와 김포평야 그리고 연백평야의 곡창지대를 이루었다. 문수산 중턱에서 강화만을 중심으로 왼쪽 강화도 오른쪽 김포평야 그리고 강화만 북쪽 연백평야, 지명으로 북한의 황해도 개풍군의 너른 들판에 한눈에 들어왔다. 추석을 앞 둔 너른 들판은 곡식이 알차게 영글어 가고 있다며 황금빛이었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기수지역의 바다 속은 얼마나 풍요로울까 싶었다. 문수산 중턱에서 바라본 그 풍요롭고 아름다운 풍경은 남쪽의 김포평야와 북쪽의 연백평야가 다름이 없었고 남과 북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강화만 바다 속이 다를 바 없겠는데 그 바다 위로 세상 어느 경계선보다 가장 강고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는 것은 어인 아이러니며 비극인가? 잠깐의 휴식을 마무리하고 우리 일행은 문수상 정상을 향해 다시 산행을 재촉했다.
가파른 오르막 끝에 문수산 산등성이를 따라 무너진 또 복원된 산성 성벽이 이어지고 그 정상에 장대(將臺)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문수산성 장대는 수원 화성이나 강화도에서 볼 수 있는 화강암과 벽돌을 함께 쓴 방어벽 돈대(墩臺)를 두르고 있어서 이 성이 조선 후기에 축조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성임을 알 수 있었다. 문수산성은 강화도 전등사를 품고 있는 정족산성과 함께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와 조선의 군대가 격전을 치른 곳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문수산 정상 장대 자리에서는 동쪽으로 한강 하구 일산 파주 일대, 강화만, 북한 황해도 개풍군 일대 그리고 왼쪽으로 강화도와 김포반도 사이의 바닷길 염하(鹽河)까지를 한꺼번에 시야에 담을 수 있는 파노라마 같은 풍경이 펼쳐져 요즘은 폰카도 구비하고 있는 파노라마 사진 한 장 남겼다. 산행을 나선 토요일은 올 들어 가시거리가 가장 멀리까지 확보된 날이 아니었나 싶어 망원경을 배낭에 챙겨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문수산성 북문에서 시작된 등산길과 반대로 하산길은 문수산성 남문 방향으로 잡았다. 깎아지른 직벽 같은 정상아래 등산로를 지나 평탄한 곳 나무그늘 아래 일행들이 각자 짊어지고 온 막걸리며 음식을 풀었다. 고된 산행 끝에 먹는 술과 음식이라 막걸리는 물론이려니와 튀김과 전, 닭발 맛이 기 막혔다. 배낭 안에 돗자리를 챙겨왔는데 나무 그늘 아래 나무 평상을 잘 꾸며놓아 돗자리를 펼 필요도 없었다. 산행하는 사람들 신선놀음하라고 요즘 지자체들 예산 아낌없이 풀어 좋은 시설물을 만들어 놓아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일행이 맛난 음식을 나누는 동안 비쩍 마른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꼼짝 않고 우리 평상 옆을 지키면서 우리가 던져주는 소시지 조각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문수산 정상에 나타난 길냥이는 비쩍 마른 것 빼고는 우리 집에 떡 하니 거처를 트고 나를 집사 취급하는 포동포동한 우리집 길냥이와 똑 닮았다. 데려올 걸 그랬나? 문수산성 성벽을 따라 산성 남문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은 염하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내내 이어졌다. 서향으로 이어진 길이라 오후로 저무는 따가운 가을 햇살이 얼굴을 태웠는데 그 햇살은 고기잡이배들이 떠있는 염하 바닷길 위에도 떨어져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3000번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며 핸드폰 속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읽으니 북한 집권자들은 마치 자해 공갈단 패악질 하듯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으며 우리 대통령은 그것을 외교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며 유엔이 있는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셨다 한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수많은 차량들이 씽씽 오고 가는 성동삼거리 검문소에서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알 오 케이 엠무 씨, 팔각모 싸나이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부대 용사 하나가 벌건 백주 대낮에 백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땀 삐질삐질 흘리며 뻗치기 자세로 서있는 장면을 봤다. 그렇다, 평화가 어디 거저 얻어지는 것이던가? 가을 휴일 오후 김포반도 해안을 따라 겹겹이 쳐진 철책에 아랑곳없이 문수산 산행길은 아름답고 또 평화로웠다. 2017
2017. 9. 16.
김포 문수산
Moonsusan mt., Gimpo, Kore
배경음악
김영동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