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시티 모스크
Kota Kinabalu City Mosque, Sabah, Malaysia

MAR 2007 HWP

 

몇 해 전 말레이지아 사바(Sabah)주 코타키나발루(KotaKinabalu)로 뜻하지 않은 공짜 여행을 다녀왔다. 말레이지아는 다민족 국가이고 특히 우리가 보루네오라고 알고 있는 큰 섬 북단에 위치한 사바주는 더욱 다양한 민족 구성을 보이는 곳이다. 그곳에는 원래의 보르네오 원주민에다 말레이반도에서 건너온 말레이인 중국인 심지어는 인도계 사람들까지 섞여 살아가고 있다. 이런 다민족 국가에서는 종교적 스펙트럼도 다양하게 마련이어서 도시 외곽에서는 천주교 성당이나 학교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안내인의 말에 따르면 보루네오가 유럽 식민지였을 때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활발한 선교가 이루어져 보루네오 원주민들 중 천주교 인구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말레이지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말레이인들이고 그들 대다수가 믿는 종교는 이슬람이다. 그래서 작은 휴양도시인 코타키나발루 시내 아름다운 건축물 중에는 이슬람 사원 모스크(mosque)가 많고 거리 곳곳에서 이슬람 교도의 상징인 히잡(hijap)을 머리에 두른 여성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내가 머문 곳은 훌륭한 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대규모의 호텔식 리조트를 였고 게다가 코타키나발루가 사바주의 주도(洲都)라고 하지만 시내는 물론이려니와 교외지역은 아직 개발이 덜 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곳 저곳에서 만난 아마 무슬림이게 마련일 사람들은 순박하기 이를 데 없고 자연환경 마저 아름다워서 나는 코타키나발루가 퍽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매력은 안내를 맡은 가이드입장에서는 보여줄 것이 많지 않은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시내 관광을 시킨답시고 관광객들을 이끌고 그가 데려간 곳이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시내 이슬람 사원이었다. 나는 처음 이 모스크 구경이 썩 내키지 않아 일행에서 빠지고 싶었지만 함께 움직이는 일정인데 유별나게 보이고 싶지 않아 겨우 버스에 올랐다.

 

우리 일행이 시내 모스크에 도착한 것은 거의 해질 무렵이었다. 낮은 구름이 드리운 하늘 아래 날씨조차 썩 좋지 못했다. 버스에서 내려 모스크 앞에 이르니 마침 이슬람교도들이 매일 하루 다섯 번 드린다는 예배 중 일몰 예배시간이 가까워져서 사원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그때 마침 사원의 확성기를 타고 예배를 알리기 위해 누군가 읽고 있는 낭랑한 코란의 독경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는데 그 소리는 낮게 드리운 구름과 모스크 첨탑의 장식과 꾸밈을 배제한 순백의 벽면과 모스크를 둘러싼 호수의 반영과 마침 남중국해로 떨어지기 시작한 구름 너머의 일몰과 어우러져 이루 말할 수 없이 신비하고 또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비록 신실하지 못하나 오래된 내가 믿는 종교의 제단 앞에서도 자주 느껴 보지 못한 신비함과 경건함이 어우러진 체험이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내게 다가와 함께 기도하지 않겠느냐 속삭였다면 나는 틀림없이 메카 방향을 바라보며 무릎 꿇어 엎드리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그때 경험이 내가 지금껏 신봉해온 종교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신은 하나인데 다만 어떤 사람들은 그를 알라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를 부처라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를 하느님이라 하는 것이며 관용을 베풀고 덕을 베풀며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베풀라 가르치는 것은 어느 종교든 한결 같을 뿐 다만 그 언어와 제의가 다를 뿐이다. 종교로 인하여 아름답지 못한 일이 생기고 증오와 미움이 생기고 테러가 생기고 전쟁이 생기는 것은 종교를 빙자한 사람들의 악행 때문이지 종교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낭랑한 코란의 암송 소리가 울려퍼지는 모스크에서 과연 우리가 신봉하는 것이 종교인지 아니면 종교를 내세워 사람들이 만든 그 형식인지 생각해보았다. "신(神)은 하나인데 인간이 붙인 이름과 규율이 다를 뿐"이지 않겠는가?

 

Andre Gagnon

"Un piano sur la 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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