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서퍽 입스위치 크라이스트처지 공원
Christchurch Park, Ipswich, Suffolk, UK

2012. 11.

1534년 영국왕 헨리 8세(Henry VIII)는 본인의 이혼 및 재혼 문제로 카톨릭 로마교황청과 다투다가 열 받은 나머지 아예 딴 살림을 차리기로 작정하고 영국 국교회(Church of England)를 설립하였는데 이를 성공회(聖公會, Anglican Domain)라고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신앙이라는 것은 때로 현세 정치제도를 초월하는 힘을 가진 것으로 제 아무리 영국왕이 카톨릭교회와 지지고 볶다가 딴 살림을 차렸다 하더라도 그전까지 카톨릭 교회의 선한 양이었던 영국 백성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영국 국교회의 선한 양으로 돌변한 것은 아니라서 여전히 카톨릭을 믿는 영국 백성들과 성공회를 믿는 백성들 사이의 알력은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사실 이 문제는 영국 국교회가 설립되고 4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인데 잘 알려진 영국 북아일랜드 분쟁도 실은 그 지역에 카톨릭을 믿는 사람들이 영국과 그 국교회의 지배를 거부해서 생긴 분쟁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영국 국교회 곧 영국의 왕실과 지배계층은 카톨릭과 결별을 하고 나서 카톨릭 교도들을 아주 못살게 굴었던 모양이다. 이에 영국왕 제임스 1세가 재위에 있던 1605년 카톨릭 교도였던 가이 포크스(Guy Fawkes)라는 사람과 그 일당들은 국교도인 지배계층에 테러를 계획하고 영국 귀족회의장(House of Lords) 지하에 어마어마한 양의 폭약을 넣어두고 같은 해 11월 5일 귀족회의가 열릴 때 이를 터트려 한방에 이들을 날려 버릴 궁리를 했다. 그러나 가이 폭크스의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고 말아 가이 포크스와 그 일당들은 모두 사형 당했으며 귀족회의장에 쟁여 두었던 폭약들은 모두 밖으로 운반되어 공터에서 모두 불질러지고 말았다. 가이 포크스의 거사가 발각되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으므로 가이 포크스의 거사날이었던 11월 5일은 영국 국교회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나라를 위험천만한 위기에 구한 기념할만한 중요한 날이고 또 공터에서 가이 포크스의 폭약이 불태워지는 모습은 굉장한 장관이었으리라. 이로부터 11월 5일은 가이 포크스 데이(Guy Fawkes Day), 가이 포크스 나잇(Guy Fawkes Night) 혹은 영국에서 보다 널리 쓰이는 낱말로 본파이어 나잇(Bonfire Night)이라 불리며 영국인들이 폭죽과 짚단을 불태우며 밤새 즐기는 중요한 기념일이 되었다.

대체로 영국인들은 이웃에게 방해가 되는 소음에 민감한 편이고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중요한 미덕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 몰론 살아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더라만은 – 아무튼 가이 포크스 데이만은 예외라 가이 포크스 데이가 임박하면 영국 가게들은 매대에 폭죽을 내놓기 시작하고 당일 밤에는 대부분의 가정이 불장난 치고, 집 뒷마당에서 폭죽을 터트리고 또 공원과 같은 공공시설에서는 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대형 불꽃놀이가 열려서 아마 먼 인공위성에서 11월 5일 밤 영국 전국을 촬영하면 환한 불꽃으로 아주 장관을 이루고 있으리라. 영국에 온 첫해 11월 5일 밤에는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요란을 떠는가 의아했으니 아마 그것은 영국에 도착한지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외국 살이 적응에 심신이 지친 나머지 지들끼리 불장난을 하건 말건 나랑 무슨 상관이냐 했으리라. 그러나 올 해, 아들 녀석은 가이 포크스 데이 전날 학급 친구들이 오늘 밤에 어떤 폭죽을 터트리겠네 하는 화제로 생 난리법석을 떨더라며 ‘아빠, 우리는 폭죽 안 터트려요?’라고 간접화법을 통한 은근한 압력을 넣는 바람에 세인즈버리(Sainsbury)에서 폭죽 두통을 사다 아들 녀석에게 안기지 않을 수 없었고 오늘 밤 집 뒷마당에서 밤 하늘에 퍼지는 폭죽 불꽃에 아비인 내가 오히려 더 신나고 즐거워 오두방정을 떨고만 것 같아 머쓱했다. 다른 서북부 유럽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영국도 서머 타임 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10월 31일이면 서머 타임이 해제되어 여름에 밤 9시가 넘어야 기울던 해는 서머 타임 해제 이후 점점 짧아져 동지 즈음에는 오후 3시가 넘으면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한다. 가이 포크스 나잇은 이제 참으로 길고 잦은 비에, 으슬으슬 춥고 시린 영국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의미도 있겠고 그러므로 겨울이 오기 전에 신나는 축제를 아낌없이 즐기자는 의미도 있다는 점을 누가 알려줬는지 모르겠지만 올해 우리 가족도 가이 포크스 나잇에 뒤뜰에서 폭죽을 쏘아 올리게 되었다. 올 동지(冬至)는 12월 16일이던가? 잡문 몇 자 쓰고 뒤뜰로 나가니 자정이 가까워 오는 이 시간에도 건너 집에서 쏘아 올리는 폭죽으로 영국의 밤 하늘이 아름답다. 2011

가이 포크스의 가면, 출처 영문 위키사전

가이 포크스 나잇에 영국 사람들이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불꽃 놀이, 불 놀이를 한 전통은 매우 오래되었는데 1982년 영국 만화가 데이빗 로이드(David Lloyd)가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라는 만화를 위해 디자인한 위 가면이 이후 가이 포크스의 가면(Guy Fawkes mask)로 표준화되다시피 하였으며 이후 이 가면은 얼굴을 가릴 목적으로 세계 곳곳의 시위 현장에서 등장하고 있고 얼마전 국내의 어느 시위 현장을 담은 보도 사진에서도 봤다.

'○ 영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학의 다리  (0) 2019.11.13
스카이폴  (0) 2019.11.07
지브롤터 이야기  (0) 2019.10.08
대통령의 요트 생각  (0) 2019.09.07
대왕의 초상화  (0) 2019.08.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