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서퍽 올드 펠릭스토우
Old Felixstowe, Suffolk, UK
2011. 9.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1980년대 초 요트에 취미를 붙이고 지인들과 함께 당시 돈으로 이백 만원 정도했다는 경주용 요트를 샀다. 노 전 대통령의 요트에 대한 애정과 의욕은 대단해서 당시 우리나라보다는 요트가 활성화된 일본에 가서 요트 조종술을 배웠고 강사자격까지 취득했다. 이후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우리 사회의 격변과 함께 법조인에서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노 전 대통령은 보수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아까운 수구 언론과 대립각을 세웠고 이들 수구 언론은 서민 변호사,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알려진 정치인 노무현이 "호화 요트"를 소유했고 이 요트에 지인들을 태워 선상 파티를 하며 일본까지 다녀왔다는 기사를 냈다. 그게 정말 호화 요트라 쳐도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으로 산 요트가 아닌 한 요트를 즐기는 것과 서민 변호사, 인권 변호사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또 지금도 모르겠다. 나는 자본의 자유를 신봉하는 보수주의자다.
돛을 펼쳐 바람의 힘만으로 항해하는 세일링 요트(sailing yacht)는 크루저(cruiser)와 딩기(dinghy)로 대별되는데 크루저는 선실을 갖추고 먼 바다 항해가 가능한 요트이며 딩기는 4인승 이하에 선실 없이 경기용으로 사용되는 소형 요트로 주로 내수면이나 근해 항해에 사용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인들과 공동 소유했다는 요트가 바로 딩기급 요트였다. 우리가 쓰는 말이 때로 묘할 때가 있어서 그냥 요트(yacht)라 하면 돛을 펼쳐 바람의 힘으로 항해하는 세일링 요트뿐만 아니라 돛 없이 엔진만으로 항해하는 파워 보트(power boat)까지 모두 요트라 부른다. 구조나 크기와 무관하게 스포츠나 레져 용도로 사용되는 선박의 총칭이 요트인 것이며 여기에 굳이 호화라는 말을 붙이자면 파워 보트에나 가능한 것이지 세일링 요트는 크게 해당이 없다. 만수르 요트라고 검색하면 7,000억원이나 한다는 요트가 뜨는데 그 만수르 요트가 바로 파워 보트로 분류되는 요트다. 대부분의 세일링 요트는 바람의 힘만으로 항해하기 때문에 항해 중 돛의 각도와 선체 밸런스를 인력으로 쉴 새 없이 조정해줘야 해서 항해 중에는 비록 크루저급 세일링 요트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을 태우고 게다가 선상에서 파티를 열 여건이 못 된다. 하물며 크루저급도 못 되는 선실도 없고 고작 4명 정원을 넘지 못하는 딩기급 세일링 요트를 가지고 호화 요트 운운했으니 보수를 가장한 수구 언론사의 패악질이야 과거부터 유명했고 현재도 진행형이지만 이건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근대 이후 세계 해상 패권을 차지하여 강대국이 되었던 영국에서는 요트를 여가활동으로 즐겨온 역사가 오래될 뿐 더러 그 저변 역시 무척 넓다. 더구나 영국에서 내가 살던 동네는 영국 동부 해안에 면해 있었던 데다 바다로 통항 가능한 내수면까지 발달한 지역이어서 행정 명칭조차 해안지역(coastal district)이라는 말이 들어갔다. 덕분에 영국에 사는 동안 수많은 요트를 봤고 만수르 요트까지는 못 되도 호화 요트라고 부를만한 요트 역시 많이 봤다. 이들 요트를 보면서 영국 사람들이 모두 부자라서 요트를 즐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고 다만 이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했다.
거리에는 경차에서부터 최고급 스포츠카까지 여러 종류의 차들이 다닌다. 물길을 다니는 배 역시 딩기에서 만수르 요트까지 우리 사는 세상사 이치와 마찬가지로 다양할 따름이다. 영국에서 내가 본 요트를 사진으로 담으며 또 어떤 날은 선실에 화장실, 조리시설을 갖춘 요트를 하루 전세 내어 가족들과 내륙 물길을 유람하며 그 즐거운 시간에 전직 대통령의 요트 생각에 마음 한편이 묵직했다. 그는 다름은 틀림이 되는 나라 우리들의 잘난 조국 대한민국에서 대학도 못 다닌 주제에 판사가 되고 변호사가 된 죄, 판사와 변호사인 주제에 골프장에 가지 않고 딩기 요트 타러 바다로 간 죄, 대학도 못 다니고 골프장에도 가지 않는 주제에 대통령이 된 죽을 죄를 졌던 것이다.
영국 서퍽 올드 펠릭스토우
Old Felixstowe, Suffolk, UK
20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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