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왕 헨리8세의 복제 초상화, 영국 도버성

Copy of Portrait of Henry VIII, Dover Castle, UK

2011. 4. 

 

우리에게 세종대왕이 있듯 영국 사람들에게는 헨리8세(Henry VIII)가 있다. 다만, 우리 세종대왕님이 백성을 널리 사랑하신 애민 성군의 이미지라면 영국 헨리8세는 폭군까지는 아니더라도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던 철권 군주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겠다. 헨리8세는 왕권을 제약하려는 신하들을 과감하게 숙청했고 아들을 놓지 못하는 왕비와 이혼하고 다른 궁녀와 재혼하고자 로마 카톨릭(the Roman Catholic Church)과 결별한 후 영국 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를 세워 스스로 그 수장 지위까지 겸했다. 카톨릭은 교리로 이혼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에 본인의 이혼을 관철 시키고자 카톨릭에서 교적을 스스로 파버리고 아예 딴 살림을 차려버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성공회라 부르는 기독교 교단 시초다. 이 같은 헨리8세의 이른바 종교개혁의 속사정은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 이전까지는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종교 교리를 왕권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영국은 물론 서유럽 역사에 있어 매우 의미 있고 중대한 사건으로 이해되고 있다. 게다가 헨리8세의 강권통치는 왕권을 크게 강화해서 후대 엘리자베스여왕 치세에 영국이 유럽 경쟁 국가들을 물리치고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만들었다고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강력한 군주 헨리8세는 어떻게 생겼을까?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이 헨리8세의 어진,  초상화는 영국 곳곳에 그야말로 널려 있어서 누구나 헨리8세의 살아 생전 모습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헨리8세는 그 시대에 벌써 이미지 통치의 본질을 잘 알고 있어서 당대 유럽의 최고 화가로 꼽히던 독일 출신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을 왕실 화가로 고용해서 본인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으며 그것도 여러 차례 같은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덕분에 이 초상화들은 오늘날 영국 도처의 옛 고성과 궁전, 박물관, 미술관이 소장, 전시하고 있으며 그 사본들 역시 영국 곳곳에 걸리게 된 것이다. 한 화가가 같은 인물을 대상으로 여러 번 그린 초상화라 하더라도 각각의 초상화는 미묘한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그 중 워커미술관(Walker Art Gallery, Liverpool)에 있는 등신대의 전신 초상과 로마국립미술관(National Museum of Rome)에 상반신 상의 작품성이 높아 오늘날 사본으로 자주 인용되는 모양이다. 해서 영국 도버성(Dover Castle)을 찾았을 때 성의 식당에 걸린 헨리8세의 반신 초상화가 눈에 들어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최근 확인해보니 이 역시 로마국립미술관 소장본을 인쇄한 것이었다. 이렇게 각 판본마다 차이가 있기는 해도 초상화마다 공통적인 것은 그림 속 헨리8세가 화려한 제왕의 의복을 입고 있다는 것, 양 어깨는 인체 비율을 따위는 무시하고 떡 벌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두 다리는 어깨 넓이만큼 벌려 전체적으로 과도하리만큼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라 하겠다. 또 초상화 속 헨리8세의 인상은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앞에서 엄한 소리를 했다가는 초상화 속에 그려진 꽉 쥔 주먹으로 한 대 얻어 맞겠다 싶은 인상이지 않은가? 과연 우리가 역사로 알고 있는 인물,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던 영국왕 헨리8세의 초상화다 싶다. 홀바인이 그린 여러 헨리8세의 초상화 중 두 점이 오늘날 영국 왕실 별궁으로 쓰이고 있는 윈저성(Windsor Castle)이 소장하고 있다는 기록을 위키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올 봄에 윈저성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반나절 동안 구경하기에 성의 규모가 하도 크기도 하고 성 내부 대형 홀에 – 성 조지 홀(St George's Hall)로 기억하는데 확실치 않고 내부는 엄격하게 사진촬영 금지였다. – 역대 영국 열왕(列王)의 대형 초상화가 줄줄이 빽빽하여 그 속에서 홀바인이 그린 헨리8세의 초상화를 본 것인지 만 것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영국에서 헨리8세의 초상화를 볼 때마다 우리 세종대왕은 어떻게 생긴 분이셨을까 궁금했다.

 

그렇다면 우리 세종대왕의 초상화는 어찌된 것일까? 광화문 앞에도 여의도공원에도 세종대왕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모두들 소중하게 모시라고 만 원권 지폐 권면에도 우리 세종대왕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 세종대왕의 모습은 당시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일제에게 협력한 전력 때문에 말썽이 많은 화가 김기창(金基昶)이 1970년데 초에 그린, 상상화에 다름 아니라는 것은 인터넷의 지식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유구한 겨레의 법통을 정정당당하게 이어받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이전에도 태정태세문단세로 왕권을 이어온 오백 년 조선왕조의 역사가 있었고 각 제왕의 용안을 모신 어진은 마치 살아있는 제왕 모시듯 귀하게 그려지고, 모셔지고, 보관되어 왔는데 왕조가 망하고 일제 통치기간 중에 관리부실로 일부 망실되고 결정적으로는 6.25 전쟁의 와중에 대부분 홀라당 태워먹고 말았다 한다. 때문에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의 생전 모습을 확인할래야 확인할 도리가 없어졌고 이에 친일 전력으로 문제가 된데다 지 모습을 자화상처럼 그려놓고, 혹은 그런 의혹이 생기게 그려놓고 거기에 제왕의 익선관과 곤룡포를 얹어 그린 다음 세종대왕 어진입네 하고 내놓은 화가의 작품을 우리는 세종대왕의 어진으로 알고, 모시고 또 사용하고 있는 기막힌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라지고 불타버린 것을 어찌 되돌릴 수가 있을까만은 영국에서 찍은 헨리8세의 초상화 사진을 정리하면서 겨레의 법통을 이은 우리 대한민국을 자랑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긍지라면 한편으로 그 유산들을 잘 보전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남기는 잡문이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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