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나는 독일 함부르크 장기 출장 중이었고 출장 중 휴일에 베를린 구경을 한 나절 다녀왔는데 마침 그때 베를린영화제가 열리고 있었으며 홍상수 감독의 출품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주인공 영희로 출연한 배우 김민희가 여우주연상을 탔다는 보도를 봤다. 베를린영화제라면 꽤 유명한 국제영화제로 알고 있고 외국에서 주는 상 각별히 좋아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큰 경사라 하겠는데 예상대로 그 보도는 소식이 알려진 그날 당일 잠깐 스쳐 지나치듯 흘러가버린 것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그 이유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이라 여기에 달리 써놓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겠다.
2015년 홍상수 감독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영화를 제작 발표했고 그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김민희가 출연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륜이라 칭하는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1996년 홍상수 감독이 상업 극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처음 발표한 이후 나는 홍상수 감독이 발표한 영화를 거의 대부분을 봤고 물론 『지금은맞고...』도 재미있게 봤다. 그 영화 이후 두 사람이 소위 불륜관계라는 보도가 연이어 터져 나왔고 두 사람은 해외로 잠적했다고 하던데 왠 걸, 그 이후에도 두 사람은 국내외를 오가며 영화의 제작과 발표를 계속 이어오고 있을 뿐 더러 많이 알려진 여러 국제영화제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내놓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영화배급사, 상영관들은 두 사람과 관련된 영화를 거의 취급조차 하지 않고 있는 듯 보이며 그 덕분에 유로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며칠 전에야, 김민희의 2017년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밤의 해변...』를 다운 받아 보았던 것이다. 내가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이렇게 즐겨보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배꼽을 쥐고 혼자 낄낄거리며 웃게 되는 장면과 반드시 마주치게 되며 영화 감독으로서 영화판에서, 그리고 그것을 우리 각자의 일상의 무대로 치환해 보면 우리가 살며 맺게 되는 인연 혹은 관계의 복잡다단한 속성과 그런 한편으로 그것의 덧없음과 마주치게 된다. 복잡다단하게 그리고 덧없이 사는 것, 우리가 그리 살고 있지 않은가? 『밤의 해변…』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영화감독인 이른바 불륜남과 영화배우인 불륜녀를 영화 스크린으로 그대로 옮겨와 “사랑의 자격”을 묻고 있었고, 재미있었다.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하거나 그와 상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형법 상 범죄, 간통죄는 2015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단으로 폐지되었고 김민희와 홍상수는 간통죄 폐지로 최초의 수혜를 입은 유명인들이 되었다. 물론 간통 행위로 피해를 본 피해자의 민법 상 청구권이 폐지된 것은 아니다. 다만 간통이니 불륜이니 하는 문제는 제3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과 심지어는 당사자들의 심리 상태까지 결부된 것이어서 제3자가 그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나 역시 그들 속사정을 알 수 없으니 두 사람의 소위 불륜은 불륜이라 치고, 재능 걸출한 영화감독과 배우가 이 나라에서 활동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이 상황이 안타깝고 영화평에 붙은 익명들의 비난이 아니라 차라리 저주와 같은 말에 까닭 없이 내 가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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