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실비오 로드리게스 노래 「유니코르니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OST
오토바이 타고 남미대륙 일 만 킬로미터를 종단 여행, 그들은 털털거리는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1952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남미 대륙 종단 여행에 나섰다. 우리가 체 게바라로 알고 있는 풍운아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Guevara de la Serna)는 1928년 6월 14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북서부 로자리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잦아 그의 부친은 그에게 여러 가지 운동을 시켰다. 그가 밟은 삶의 궤적을 뒤집어 보면 게바라의 역마살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열 일곱에 벌써 자전거에 모터를 붙인 바이크를 타고 아르헨티나 중부지방을 여행했다. 천식으로 고생이 심했던 게바라는 1947년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의 졸업논문은 기관지 천식의 주요 원인이 되는 「알레르기에 관한 연구」였다. 의과대학 졸업을 앞둔 1952년 게바라는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먼 친척인 알베르토 그라나도(Alberto Granado)와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대륙 종단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날 때 게바라는 스물 넷이었고 동행인 알베르토는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들이 여행한 거리는 일 만 킬로미터를 훨씬 넘었고 모터사이클은 여행 중간지인 페루에서 고장 났다. 나머지는 히치 하이킹을 포함한 도보여행이었다. 젊은 그들은 길 위에서 죽도록 고생을 했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Motorcycle Diaries)는 여행 출발지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되어 그 종착지인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끝난다. 10개월 간 길고 먼 여행이었다. 오토바이는 마치 게바라의 미래처럼 소실점 뒤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할 길 없는 광활한 아르헨티나의 대초원 팜파스를 달렸다. 오토바이는 눈 덥인 안데스 산맥의 설산을 넘고 가파른 고개마루를 내달리며 넘어지고 부셔졌다. 그 오토바이가 수리 불능의 고장으로 망가져버리자 오토바이 안장 위에 눈물을 떨군 두 청년은 오토바이를 고철로 팔아 주린 배를 채웠다. 그들에게 없는 것은 돈이었고 그들이 가진 것은 미지의 미래와 젊음이었다. 안데스 산맥의 꼭대기, 스페인 침략자들은 무자비하게 원주민들을 약탈하고 살육했다. 페루의 마추픽추는 살해당한 잉카문명의 묘비석이었다. 그 돌무더기 위에 서서 두 청년은 망연자실 했다. '여기에 남아 잉카인을 위한 혁명의 삶을 살면 어떠하겠냐.'고 알베르토는 게바라에게 물었고 게바라는 '총도 없이 혁명은 무슨 놈의 혁명이냐.'고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게바라는 총으로 혁명을 이뤘고 서른 아홉에 총살 당해 죽었다. 오토바이 없이 그들은 걸어서 때로 트럭을 얻어 타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 서민들의 시장으로, 빈민굴로, 광산으로 돌아다녔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센병이라고 하는 나환자촌에서 환자들과 생활하기도 했다. 그들은 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에 뗏목을 타고 아마존 강을 건너 베네수엘라로 건너갔다. 약학을 전공한 알베르토는 카라카스에 일자리를 구해 남았고 게바라는 카라카스에서 미국 마이애미로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그들의 여행은 거기에서 끝났다. 영화도 거기까지다.
게바라는 남미여행을 통하여 남미대륙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그곳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과 그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사회과학적 안목을 길렀고 인간해방에 기초한 인식의 굳건한 토대를 쌓게 되었다고 누군가 기록했다. 영화는 그의 오토바이와 도보 여행을 쫓아 젊은 의학도가 총을 든 투사가 되는 흐름을 쫓고 싶었나 보다. 영화가 끝난 후 그래서 그들의 여행이 끝난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을 1953년에 졸업한 체 게바라는 종합병원 취업의 길도 아니고 병원 개업의 길도 아닌 핍박 받는 남미 원주민을 위해, 반미 제국주의 투쟁을 위해 볼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로 떠돌다가 쿠바혁명을 모의 중이던 피델 카스트로 일당과 만났고 그들로부터 "체(Che)" 즉 동지라는 예명을 얻어 체 게바라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그 동지라는 말이 섬뜩하다. 체 게바라는 혁명세력의 주요 일원이 되어 1959년 쿠바의 친미 바티스타 정권을 총으로 전복시키고 정권을 장악했다. 쿠바 사회주의 정권의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의사이자 뛰어난 게릴라였으나 뛰어난 정치가는 되지 못했다. 쿠바에서의 모든 것을 털고 바람처럼 떠난 그는 또 다른 혁명을 꿈꾸며 볼리비아로 떠나 게릴라로 다시 나타났다. 미국은 쿠바에서 카스트로 일당을 만만하게 보았다가 뼈아픈 실수를 경험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뒷마당인 남미대륙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로 작심하고 특수부대를 볼리비아로 보내 게바라 사냥에 나섰다. 1967년 그는 볼리비아 밀림 속에서 미국이 보낸 특수부대에 체포되어 현장에서 즉결 총살 당했다. 볼리비아의 정글은 그의 고향 아르헨티나의 코르도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세월도 변하고 세상도 변했다. 아직도 레드 컴플렉스가 정치적 이슈가 되어 온 나라가 떠들썩한 이 이상한 냉전의 변방에서 체 게바라에 관한 저술들이 출판되고 체 게바라의 삶을 담은 영화가 개봉되었다. 다원화되고 민주화된 사회라서 그런가? 그러나 나는 이 아이러니가 도무지 안 맞는 옷을 몸에 걸친 듯 불편하다. 도대체 체 게바라가 무슨 일을 한 것인지 알고들 이러는가? 그가 전문직 의사였고 잘생긴 미남에다 한때 세상을 뒤흔든 풍운아였으며 노추의 오점을 남기지 않고 젊은 나이에 총살 당한 짧고 굵게 살다간 인간의 전형이어서 이 이상한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관심을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영화는 여행을 마치고 남긴 게바라의 한마디로 끝을 맺었다. (여행을 마친)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라고. 영화를 보며 나도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그런 여행을 꿈꿨다. 내게는 그것으로 족했다.
게바라와 카스트로가 혁명으로 세운 나라 쿠바는 아직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합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제 지구상에 몇 안 되는 국가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그들의 단지 여행객의 돈이 탐나서 멕시코에서 우리 여권을 디밀면 비자 대신 여권에 입국을 허가하는 스템프를 쾅쾅 찍어준다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네 심정으로는 꽤나 불쾌한 입국절차이다. 그래도 가봐야 하는 나라가 바로 쿠바라고 몇몇 사람들이 책 한 권을 통 채로 빌려 설파하고 있으니 확실히 매력이 있는 나라인 모양이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가보고 싶은 곳은 오히려 늘어가니 이 또한 근심일 따름이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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