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이탈리아 지중해 연안 작은 섬에 칠레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네루다(Neruda)가 망명객으로 정착한다. 큰 손님을 맞게 된 작은 섬에 네루다를 수신인으로 하는 편지가 세계 각지로부터 쏟아져 들어오고 마을의 우체국장은 네루다의 우편물을 소화하기 위해 임시직 우편배달부 마리오(Mario)를 고용했다. 어부 아버지 밑에서, 그러나 어부가 될 생각은 조금도 없이 몽상에만 빠져있는 백수 마리오는 거물을 위한 우편배달부가 되면서부터 새로운 세계에 눈 뜬다. 네루다의 시(詩) 세계, 네루다의 정치적 신념 게다가 여자를 사랑하는 방법까지 배우고 동네 술집에서 일하는 베아트리체를 사랑하게 된 마리오는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 그리고 네루다는 망명객의 신분에 벗어나 고국 칠레로 귀환한다. 이제 영화는 끝인가 싶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동네 사람들이 외부 세상과 접하는 유일한 창구인 동네 영화관의 ' 대한 뉘우스'류의 화면 속에나 접할 수 있는 거물 네루다가 다름 아닌 자신들이 사는 촌구석에 정착하면서 이들 촌사람들의 마음속에 네루다는 처음에는 경외심으로 그리고 그가 자신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마리오와 교류하고 교감하면서부터는 인간적인 친숙함으로 각인 되었다. 그러나 네루다가 망명객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여전히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대한 뉘우스'에서 접하면서, 그럼에도 그들과 나누었던 최소한 그들에게는 의미가 컸던 그 교류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을 때 촌사람다운 실망감을 표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루다와의 시간을 마감하고 정작 가난한 어촌의 실업자로 돌아온 마리오는 비록 네루다가 마리오와 동네 사람들을 까맣게 잊었다 할지라도 네루다와 나눈 시간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으므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단지 네루다에 대한 막연한 경외심으로 시작된 마리오의 사회주의에 대한 정치적 신념은 가난한 어촌 생활 속에서 체득되어 간다.

 

네루다는 그에게 망명지를 제공한 작은 아름다운 지중해의 섬마을 잊지 않았다. 네루다의 이름을 딴 마리오의 아들 파블리토가 한참 자란 후에 마을을 찾은 네루다, 그러나 네루다를 맞은 것은 마리오가 아니라 그의 아내 베아트리체이고 대규모 사회주의 집회에 참석한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한 헌시(獻詩)를 낭독하기 위해 연단으로 가는 도중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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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에는 자극적 환희로 충만하거나 파괴 충동을 대리 만족시키는 요소가 전혀 없지만 관객을 시선을 화면에 고정시키기에 충분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우선 마리오의 어눌한 말투와 옷차림에서부터 네루다를 제외하고는 실존하는 우리 이웃들의 면면이 영화 화면에 등장할 때 느끼는 따스함이 있고 우편배달부와 자전거, 후미진 영화관, 엉터리 부정 선거와 백수 건달들, 동네의 싸구려 주점과 그 주인인 괄괄한 과부와 아름다운 그녀의 조카와 그 조카를 꼬여 내는 건달 마리오, 이런 익숙한 이야기들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지중해 섬마을의 풍광들만으로도 일 포스티노의 매력적인 영화다. 이것은 가브리엘 살바또레 감독의 영화 “지중해”의 아름다운 화면과 영화 “시네마 천국”의 인간애의 절묘한 조화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일 포스티노가 훌륭한 영화인 것은 시네마 천국의 알베르토 아저씨의 분장을 바꾸어 네루다로 만들어낸 상징성에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네루다는 이 촌사람들에게 사생활의 입장에서 보면 늙은 바람둥이였고 공인의 입장에서 보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었으며 또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을 풍미하였던 사회주의 운동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바람둥이로서 위대한 시인으로서 열렬한 사회주의 운동가로서의 면면이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이 섬마을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것은 그러한 바람둥이로서의 기질, 시인으로서의 감성, 사회주의 운동가로서의 현실 인식 능력이 마리오라는 매개를 통하여 동네 사람들 가슴에 실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였다는데 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깨달음의 표시로 네루다에게 그 섬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소리들을 네루다가 남긴 레코더에 담아 보내기로 하고 또 마리오는 자신을 죽음으로 이끈 그 집회의 자리로 나아가 네루다에게 헌시(獻詩)를 바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어린 날의 희미한 기억들로 남아있는 우리의 유신시대와 대한 뉘우스를 알고 있는 사람들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전 가난과 실업의 전후 시대를 기억하는 모든 세대들은 일 포스티노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단지 지구의 반대편, 지중해 어느 섬마을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아주 낯이 익고 익숙한 이야기들이라는데 공감할 것이다. 공감은 보편적 정서라는 말로 바꾸어 볼 수도 있다. 일 포스티노는 제법 먹고 살게 된 오늘에야 되돌아보는 향수에 안주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세워야 할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과 자연의 아름다움과 세상을 보다 올바르게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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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절을 풍미했던 유명한 미국 서부 영화들이 미국의 황야나 석양 아래서가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촬영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이태리 영화 자체는 서부 영화가 이태리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오역의 토로시의 모습을 다른 화면에서 볼 수 없고 게다가 그는 일 포스티노의 촬영이 끝난 지 며칠 뒤인 1994년 6월 14일 영화 속의 마리오처럼 죽음을 맞았다. 일 포스티노는 그에게 유작이 되는 셈이다. 감독인 라드포드(Michael Radford)는 조지 오웰의 원작소설로 잘알려진 리쳐드 버튼(Richard Burton)이 주연한 영화 "1984"의 감독으로 주로 영어 문화권에 서 활동한 영국 출신 감독이다. 그리고 느와레, 우연히도 프랑스인인 그는 시네마 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태리를 그린 영화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듯하다. 영국인 감독과 프랑스의 명배우가 함께 그리고 마리오로 대표되는 이태리를 무대로 만들어진 영화 일 포스티노는 오히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이태리 영화들 보다 더욱 이태리를 대표하는 영화로 보인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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