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스신의 향연│ 벨라스케스 │1629│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Los Borrachos_Diego Velasquez_Museo del Prado, Madrid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a Velasquez)는 1599년 스페인의 세빌리아에서 태어났다. 24살 때 스페인 국왕 필리페 4세의 초상화를 그런 것이 인연이 되어 이후에 궁정화가가 되었다. 궁정화가로 그는 국왕과 그의 가족, 친지를 그린 뛰어난 초상화를 많이 남겼다. 그는 궁정화가로 만족하지 않았으며 입신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국 귀족의 작위를 받았으며 궁내부의 고위 관료로 왕실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위치까지 올랐다. 궁정 화가로 그는 초상화는 물론이려니와 뛰어난 인물화, 역사화, 종교화를 남겼다. 그의 색상과 광선 처리, 공간배치, 선의 움직임 그리고 이것들을 조합해서 화폭에 옮겨 놓은 작품들은 너무 뛰어난 것이어서 그는 ‘화가 중의 화가’(the painter's painter)로도 불린다.

벨라스케스 자화상

그가 스스로 그린 자화상을 보면 팔자 수염을 기른 그의 얼굴에 흐르는 자긍심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한 순간의 빈틈도 없이 뜻하는 바, 목적을 따라 곧장 달려나가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의 흔적이다. 그에게 영향을 준 후대의 대가에 현대 회화의 아버지 마네(Edouard Manet)가 있고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와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가 있으며 고야(Francisco Jos de Goya)가 있다. 마네가 근대와 현대 회화를 이어주는 길목에 서 있었다면 벨라스케스는 중세와 근대를 이어주는 길목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마네의 역작들 중에 벨라스케스의 흔적이 담긴 작품이 적지 않고 실제 마네는 몇몇 작품에서 벨라스케스의 인물을 그대로 차용했다. 벨라스케스 그림의 본질 최대의 미덕은 단연 소재의 생동감에 있다. 인물은 화폭 안에서 살아 숨쉬는 듯하고 말은 화폭에서 뛰쳐나갈 듯 하다. 한편 그가 위대한 화가인 이유는 소재의 다양성에도 있다. 그는 왕실의 궁정의 화가답게 왕가의 인물을 그렸으며 그들의 의뢰에 의해 신화 속의 주인공들을 그렸으며 천사를 그렸고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그렸다. 그런가 하면 그는 궁정의 난쟁이 어릿광대를 그렸고 남루한 옷차림의 물장수와 맨발의 소년을 그렸고 노예를 그렸고 대장간의 노동자를 그렸고 삯 바느질을 하는 침모를 그렸고 어린 손자에게 계란을 부쳐주는 노파를 그렸고 하녀를 그렸으며 거렁뱅이를 그렸다. 그리고 이 인물들은 하나하나 살아 숨쉬는 듯해서 그들의 신산한 삶에 근접한 자리에 있지 않고서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려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바쿠스의 향연 부분

벨라스케스는 포도 농장의 농사꾼들도 그렸다. 포도 수확을 끝낸 남루한 차림의 농사꾼들은 그들이 재배하여 가꾼 포도로 빚은 포도주에 취해 불콰하게 취해 절어 있다. 이 농부들의 노고에 대해 포도나무 잎사귀로 만든 관을 쓴 술의 신(神), 포도주의 신 바쿠스가 나타나 농부들의 대표로 보이는 자에게 포도주 줄기로 만든 관을 하사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쿠스로부터 관을 하사 받은 자 옆에는 세 명의 농사꾼들이 이미 술에 불콰해진 표정으로 잔에 가득 담긴 술잔을 들고 있는데 이들의 표정은 마치 기록 사진과 같이 생동감이 넘친다. 술에 절은 생동감, 나는 아직 기분 좋게 술에 취해버린 사람의 표정을 묘사함에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보다 더 뛰어난 그림을 보지 못했다. 『주정뱅이들』은 벨라스케스가 성년 이후 온 생을 바쳐 모시던 왕의 의뢰로 그린 작품이다. 왕을 위해서 벨라스케스는 젊고도 단단한 기력 회복의 화신 바쿠스를 헌납하고 바쿠스 주변에 정작 밑바닥 인생 중에서도 상 밑바닥 인생들인 술 취한 사람들을 그려 넣었다. 이 술 취한 농사꾼들은 국왕 일가의 단체 초상화의 어두운 배경에 슬며시 자신의 자화상을 얹어놓은 것처럼 어쩌면 자신이 희망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얹어 놓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마리아 테레즈 공주, 벨라스케스

화가로서 궁정화가였던 스승의 딸과 결혼하는 것으로 상류 계층으로 향하는 첫 계단을 밟고 이후 성큼성큼 곁눈질 없이 성공을 위해서 위로만 걸어 나간 천재화가 벨라스케스, 어쩌면 그는 저 포도농장의 농사꾼처럼 윗 단추 두 개쯤 풀어 헤치고 술을 마시고 불콰한 얼굴을 해가며 친구들과 음탕한 농 짓거리를 하고 팠는지 모른다. 분명 『주정뱅이들』은 모든 것을 풀어 헤친 자, 마음의 짐을 벗어버린 자, 그리하여 얼큰하게 술에 취한 자의 희희낙락, 그 재미를 이해하고 동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아니다. 그래서 바늘로 찔러도 한 방울 피도 나올 것 같지 않은 성공 신화의 화신 벨라스케스가 안스럽고 한편으로 인간다운 화가로 내 기억에 남은 것이다. 왕실 고위 관리로 마지막이 되어버린 그의 임무는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와 스페인의 왕녀 마리 테레즈 공주의 결혼식을 담당한 일이었다. 이 일은 그에게 엄청난 피로를 가져다 주었고 결국 1660년 8월에 열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정략 결혼의 주인공이 된 비운의 왕녀 마리 테레즈가 코흘리개 시절부터 성년의 여인이 되기까지 벨라스케스는 여러 점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 비운의 왕녀와 그녀의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남기기로 하며 술 취한 고주망태가 담긴 마음에 닿는 그림 한 점이 오늘 이 결실의 계절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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