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제비꽃 부케를 들고 부친을 추모하는 베르트 모리조 │ 1872년 │ 파리 오르세미술관

Edouard Manet,  Berthe Morisot with a Bouquet of Violets (in mourning for her father),  Musee d'Orsay

 

일요일 저녁 기분 전환으로 영화나 한편 보자 싶어 검색하다 『제비꽃 여인』이라는 프랑스 영화 제목을 봤다. 「제비꽃 여인」, 제비꽃 부케를 든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au bouquet de violettes)는 19세기 말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가 동료화가이자 마네 동생 외젠의 아내이기도 한 베르트 모리조를 그린 초상화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강렬한 느낌에 끌렸다. 미녀가 그림 속에 담겨 있는데다 마네가 그린 다른 초상화들이 그렇듯 이 미녀가 그림을 보는 사람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때문이리라. 나는 낯가림이 있는 편이라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화하기를 어색해 한다. 게다가 상대가 미녀임에랴. 이렇게 이 그림은 보는 사람을 긴장시키는 강렬함이 있다. 그리고 검은 옷과 모자, 상복 같은 모델의 옷차림은 화사한 얼굴과 묘한 대조를 만든다. 마네는 대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배경으로 어두운 색을 즐겨 사용했다. 대표작인 「올랭피아」가 그렇고 「피리 부는 소년」이 그렇다. 제비꽃은 흔한 꽃이고 그 꽃말은 말은 겸손이라 한다. 하지만 제비꽃과 모델의 이미지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림 속의 여인은 화려하다. 더구나 제목을 「제비꽃 여인」인데 정작 제비꽃은 검은 의상 속에 묻혀 그림 속에서 애써 찾아보려 해도 모델의 가슴 즈음에 희미한 윤곽으로만 구별될 뿐이다. 마네는 왜 이 혼란스러운,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초상화를 그렸을까? 내가 늘 이 초상화에 끌렸던 이유는 이를 볼 때마다 초상화를 그린 화가와 그 그림 속에 담긴 모델, 남자와 여자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가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마네의 가족사를 읽으면 마네가 동료 화가였던 모리조를 여자로 깊이 사랑했는데 본인은 이미 결혼한 몸이라 모리조를 가까이 두기 위해 동생의 아내로 삼았다는 것과 같은 요즘 막장 드라마 요소가 머리에 떠오른다. 그런데 마네는 동료 화가였던 모리조를 좋은 여자라 생각해서 동생에게 소개시켜 서로 결혼하게 되었다 한들 막장일 이유는 없지 않은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막장은 없다. 다만 그 사랑함을 실현하는 행태에 막장이 있을 뿐이다.

 

마네의 작품은 런던의 미술관에서 직관했고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 역시 직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유럽 미술사에 일정한 관심을 두면서 몇 권의 책도 읽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제비꽃 여인」이 그려진 사연과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의 관계에 대한 단편이 기억에 남아있다. 프랑스 영화 『제비꽃 여인』은 다운 받아 보지 않았다. 지난해 이 그림이 걸려 있는 파리 오르세미술관(Musee d'Orsay)에 다녀왔는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한 일정이라 역시 이 그림을 보지도 못했다. 이래저래 「제비꽃 여인」은 신비한 그림으로 내게 오래 남을 것이다. 2014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 사진

 

제비꽃 여인은 1872년, 모리조의 나이 서른 한 살 때 그려진 것이다. 위 사진도 비슷한 시기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깊은 눈과 각이 졌으나 날카롭지 않은 턱선, 풍만하나 과하지 않은 볼륨, 미인이다. 게다가 모리조는 걸작을 남긴 훌륭한 화가였으니 마네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때는 사진이 보편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던 19세기 후반이었다. 화가들은 사진과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 즈음에 인상주의 회화가 탄생했다는 것도 내게는 퍽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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