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 미포 · 청사포
2017. 7. 30.
해운대해수욕장 동쪽 끝 미포(尾浦)에서 청사포(靑沙浦)로 넘어가는 달맞이 고개가 있다. 내 어릴 때 달맞이 고개 언덕에는 AID아파트가 서 있었고 그 아파트들을 보며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언제부터인가 키 낮은 AID아파트는 사라졌고 간혹 해운대를 찾을 때마다 달맞이 고개 언덕에 고층건물이 하나 둘씩 들어차 AID아파트의 빈자리를 매워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달맞이 고개 아래 해변과 맞닿는 가파른 언덕에 울창한 소나무 숲은 잘 보존되었다. 그 해변을 따라 부산 부전역에서 출발 동래를 거쳐 해운대, 송정, 기장, 일광, 좌천, 서생, 진하 등 내게는 퍽 익숙하고 정감 넘치는 이름의 역들을 따라 경주를 거쳐 포항까지 이어지는 동해남부선 단선 기찻길이 있었다. 동해남부선이 폐선 되었고 동해선이라는 이름의 복선 전철이 한창 공사 중에 있다. 새 동해선은 부전역에서 일광까지 운행 중이다. 폐선된 동해남부선 철길 중 5km정도 해운대 미포와 송정 구간이 산책로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몇 해 전에 들었다.
내가 아는 지금은 사라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길이 산책로로 바뀌었다니 언젠가 부산에 가면 그 옛 철길을 걸어보자 했는데 마침 이번 여름휴가 중 저녁에 그 산책로에 가 보았다. 폭염 속에 문탠 로드(Moontan Road)라 이름 붙여진, 이제는 산책로로 조성된 옛 달맞이 고개 언덕에 서니 해운대와 동백섬, 광안리 그리고 왜 명물이 된 건지는 잘 모르는 광안대교, 멀리 오륙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와 폰카로 사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달맞이 고개 아래 옛 동해남부선 폐선을 따라 조성한 산책로를 걸었다.
그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제야 그 아름다운 철길이 난개발의 광풍을 견디며 살아남은 이유를 알았다. 아직도 그곳에는 간첩선을 막겠다고 해변을 따라 긴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철조망 바로 건너에 수십 만 관광객이 북적대는 해운대 해수욕장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해가 떨어진 뒤에도 열대야의 밤은 이어져 동해남부선 폐선 산책길에 발을 디딜 때는 조금만 걷다 돌아서자 했는데 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층건물 아래 울창한 소나무 숲, 그 아래 지금은 폐선이 된 옛 철길, 그 아래 간첩선 막는 철조망, 그 아래 그러거나 말거나 아름다운 바다는 쉼 없이 파도를 해변으로 몰아붙이고 있어 조금 더 걸었다. 거기까지 걸어 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걷다 보니 청사포였다.
2017.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