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2019 ⓒ BR
업무에 치여서 저녁 밥 때를 놓치고 퇴근 후 사무실을 나와 회사 근처 초밥집에서 모둠초밥을 시켜 끼니를 때웠다. 이 혹서의 계절에 입맛도 없고 음식을 선택하는 것조차 귀찮아서 시킨 모둠초밥인데 시켜 놓고 후회다. 좋아하지도 않는 새우 초밥과 계란말이 초밥은 먹기도 그렇고 남기기도 그렇다. 게다가 모둠초밥을 앞에 두고는 좋아하는 초밥부터 먹어야 하나, 좋아하지 않는 초밥부터 먹어야 하나 갈등이니 그제서야 메뉴를 좀 찬찬히 살펴보고 주문을 할 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에라이 모르겠다. 젓가락이 오른손에 들렸으니 오른쪽에서부터 순서대로 먹자 하는데 오늘 낮에, 이 엄정한 시국에 여당 대표가 초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야당이 성토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떠올라 나 또한 이 엄정한 시국에 초밥집에서 끼니를 때워야 하나 잠깐 갈등이 생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자니 초밥 위에 얹혀 나온 생선 중에는 이 나라 어민들이 고생 고생하며 양식하여 수확한 수산물이 있을 것인데 시국을 탓하며 초밥까지 먹지 말아야 한다면 그 어민들은 어쩌랴 싶고 이 초밥집 종업원은 어찌 먹고 살아야 하나 싶어서 바싹 바싹 마른 입안을 청하 한 잔으로 우선 헹궈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초밥을 한 점씩 한 점씩 꾸역꾸역 먹어나갔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고금의 어느 현자(賢者)도 딱 부러진 답을 내놓지 못했으나 우리는 어쨌든 먹고 또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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