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식의 기원에는 여러 썰들이 난무하지만 오늘날 대표적 미국 음식이자 표준화된 만국 공통음식 햄버거가 햄버그 스테이크(Hamburg Steak)에서 유래한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이 햄버그 스테이크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라 내 어릴 적 칼질이라 했던 아주 드문 경양식 외식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함박 스테이크가 그 메뉴의 으뜸을 차지했던 기억도 난다. 2011년 영국에서 일할 때 독일 함부르크로 출장 갈 기회가 생겼고 출장 첫날 일을 마치고 함부르크 시내 호수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날 내가 택한 메뉴는 당연히 독일 함부르크에서 맛보는 원조 함박 스테이크였다. 그때는 이미 유럽 생활이 익숙해져 있어서 원조 함박 스테이크라고 해봐야 내 입 맛에 전혀 맞지 않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어릴 적 경양식 집에서 함박 스테이크를 맛보며 칼질 좀 했노라 뿌듯했던 내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드디어 원조 함박 스테이크를 맛보는 구나 싶어 두 손에 나이프와 포크를 쥐고 햄버그 스테이크 위에 얹힌 소스의 향기를 맡으며 아주 짧은 순간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물론 짐작대로 원조 함박 스테이크는 내 입 맛에 전혀 맞지 않았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외국살이를 제법 하다 보면 언어를 비롯해 생활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에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시간이 갈수록 말도 늘고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그곳 관습이나 생활 패턴들이 그럴 수 있겠거니 하고 또 그에 맞춰 살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외국살이가 지속될수록 반 적응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 한가지 있는데 그게 바로 입맛이다. 처음에는 밥 숟갈 김치 한 조각 그 까이 꺼 안 먹으면 어떠냐 싶어 끼니때 곧잘 그곳 음식을 먹지만 외국살이가 지속될수록 밥 한 숟갈 김치 한 조각이 간절해지다가 종국에는 현지 음식이 쳐다 보기조차 싫어진다. 한때는 내가 아재라 그런 것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영국에서 회사 다닐 때 사무실에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다니던 회사에 취업한 한국 청년 하나가 있었다. 영국 음식도 곧잘 먹던 청년이었다. 물론 혼자 살던 그 친구가 혼자서 살뜰히 김치를 담가 먹는다는 것은 그 친구와 제법 안면을 트고 술 한잔 같이 하게 된 사이가 된 후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외국살이의 끝판왕 그 정점은 언어가 아니라 입맛이라는 것 외국 가서 밥 숟갈 김치 한 조각 그것 안 먹고 잘 살 수 있으면 그야말로 그곳 사람 다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11년 이후 나는 몇 번 더 함부르크로 출장 갔지만 원조 함박 스테이크는 다시 먹지 않았고 그곳 한식당과 중식당을 전전하며 끼니를 때웠다.
세월이 흘러 나는 영국에서 귀국했고 다시 세월이 흘러 2017년 독일 함부르크로 출장 가게 되었다. 출장 첫 날 월요일 함부르크 시내에서 일을 보고 요기를 하기 전 오랜만에 추억의 알스터호수(Alstersee) 바람 내음이나 맡아 보자 싶어 그쪽으로 걸어 갔는데 거기 6년전의 함박 스테이크 집이 눈에 들어오는 것 아닌가? 귀국한지도 제법 되고 함부르크도 오랜만이라 한끼 때우는 건데 뭐 싶어 함박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반 정도 먹고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말았다. 남은 뱃속은 거푸 두 잔을 청해 마신 독일 맥주 생맥주가 채워 주었다. 며칠 전 EBS의 여행 다큐멘터리 『세계테마기행』 핀란드 편을 봤다. 핀란드의 명소를 소개하는 가이드로 젊은 핀란드 여성이 출연했는데 이 분 성균관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방송 말미에 이 여성이 우리말로 “한국음식 정말 먹고 싶어요.”라고 했는데 진행자가 무슨 음식을 그리 먹고 싶으냐 물으니 “감자 수제비랑 추어탕요.”라고 대답했다. 한치의 가감이나 가식을 찾아볼 수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하는 대답으로 들려 그 여성분 이 땅에서의 생활을 진정 사랑하고 즐기다 돌아갔구나 싶었고 내가 아는 외국살이의 끝판왕으로 올려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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