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 금강공원 · 금정산 · 금정산성
2017. 7. 29.
부산 동래 온천장과 금강공원은 어릴 때부터 늘 가깝고 익숙한 곳인데 내가 기억하는 한 거길 가본 적 없다. 어릴 때 어느 친구가 온천장에 있는 큰 온천탕에 온 가족이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사는 가족들도 있구나, 속으로 무척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온천장과 금강공원 뒤에는 산수화 병풍처럼 금정산이 자리 잡고 있고 어린 시절 내가 어느 장소에 있든 금정산이 내 눈에 담겨 있었다. 금강공원에는 금정산 능선까지를 왕복하는 케이블카가 있는데 그 또한 내가 어느 장소에 있든 내 눈에 담겨있었다. 검색해보니 1967년에 처음 운행을 시작하여 올해로 운행 50년째를 맞는다 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고 내가 부산을 떠난 후에도 케이블카는 무려 50년 세월 동안 운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여름휴가 중 금강공원과 금정산 사이를 운행하는 케이블카를 처음 타 봤다. 운행거리가 채 1km가 못되어 짧다는 아쉬움이 있기는 해도 그 짧은 순간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이는 금정산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온천장과 동래 일대, 멀리 광안리까지 내다보이는 풍경은 금정산 산세만큼이나 유려했다. 금정산 능선에 조금 못 미치는 케이블카 정류장에 내려 금정산성 성벽을 따라 산성 동문 쪽으로 짧은 산행을 이어갔다. 우리나라 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해왔던 것을 조선 숙종 때 대대적으로 정비했다는 대부분 비슷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어서 일부는 돌무지로만 남고 일부는 최근에 복원된 성벽과 나란한 산길을 걸으며 금정산성 역시 같은 사연을 가진 성이겠거니 짐작했다. 유럽에서 또 일본에서 철옹성이라는 말이 과하다 싶지 않은 성체와 성곽을 참 많이 봐서 우리나라 산성 길을 걸으면 대체 이 옹색한 성으로 무엇을 지키려 했나 싶다가 다른 한편으로 바로 이런 옹색함이 우리 민족이 그토록 오래도록, 끈질기게 정체성을 지켜낸 원천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그래서 일부 복원된 성벽 구간 위 낮게 쌓은 담인 벽돌로 된 여장(女牆)은 아무래도 우리의 옛 산성에는 어울리지 않게 보인다. 굳이 그것을 복원해야 했다면 대충 가공한 자연석을 얹어 두어야 어울릴 것이다.
산행길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한 여름 산행은 힘에 부쳐 금정산성 동문에 도착하여 한숨 고르고 산성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은 후 산성마을에서 산성버스 타고 하산했다. 금정산 케이블카를 현대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는데 안전문제 때문에 꼭 설비를 바꾸어야 한다면 현재 운행되는 케이블카 디자인은 살렸으면 좋겠다. 우리 주변에 세월의 깊이를 차분히 쌓아온 것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금정산 산길을 구비 돌아 부산지하철 온천장역 종점을 향하는 산성버스 안에서 가만 생각해보니 옛 흑백사진이 몇 장 남아 있는 내 앨범 속에 머리를 박박 깎고 하얀 고무신을 신고 있는 아주 어린 나를 안고 있는 아버지 모습을 담은 사진이 한 장 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사진 찍은 곳이 금강공원이라 한다. 모진 세월 고된 노동에 새카맣게 탄 아버지 얼굴만 기억하고 있는데 사진 속 아버지는 하얀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