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궁전 나폴레옹의 방
Versailles Palace, France
2013. 5
1789년 프랑스혁명 후 온 유럽이 혼란을 거듭하고 있을 때 나폴레옹은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역사 무대에 등장했다. 스무 살을 갓 넘겼을 때부터 나폴레옹은 군대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여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한 프랑스 혁명정부의 갈채를 받으며 승승장구 했다. 그 시대 많은 유럽인들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정부의 이상을 실현시켜주리라 믿었으며 독일 작곡가 베토벤은 나폴레옹의 등장에 부쳐 그 유명한 교향곡 영웅(Eroica)을 작곡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에게 혁명정부의 이상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권력을 탐한 나폴레옹에게 비난이 쏟아지자 나폴레옹은 "공화국이 위험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권력에서 물려나겠다"고 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항상 원조는 따로 있는 법이다. 나폴레옹은 혁명으로 성립된 프랑스공화국 정부를 간단히 무너뜨린 다음 1804년에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애인 조세핀을 황후로 칭하면서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성대한 "셀프" 대관식을 거행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문자 그대로 어용(御用) 화가 장 자크 다비드(David, Jacques Louis)에게 그 셀프 대관식 장면을 생생한 역사화로 남기게 했다. 내 카메라 광각 렌즈로도 한번에 다 담을 수 없는 무려 높이 6m 길이 10m에 달하는 대작이었다. 셀프 대관식을 열만큼 기고만장했던 나폴레옹의 권력은 그 후 10년만에 막을 내렸고 어용화가 다비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벨기에로 줄행랑 쳤다.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은 두 점이 그려졌는데 두 점 모두 나폴레옹과 다비드의 인생 유전을 따라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원작은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그 모작은 베르사유 궁전에 자리 잡았다.
영예든 악명이든 이 나폴레옹의 셀프 대관식 그림은 꽤 유명해서 나는 이 그림이 루브르박물관에만 있는 것으로 알다 지난 해 구경갔던 베르사유궁전에 이 대작이 떡 하니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인증샷을 찍었다. 여행 후 그림이 베르사유 궁전에 걸린 연유를 알아봤더니 그 전후가 위와 같았기에 내가 찍은 사진과 함께 몇 자 잡문을 남긴다. 권력은 무상해도 작품은 남은 찍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