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손바닥 크기의 수첩이 놓여 있다. 홍콩의 스타 에비뉴(Avenue of Stars)에서 산 것이다. 간간히 빗발이 흩날리고 무척 습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갈증이 일었다. 마침 음료 자판기가 보여 캔 음료를 하나 뽑으려 했는데 주머니에 동전이 없었다. 스타 에비뉴 모퉁이 기념품 가게에서 작은 수첩을 사고 난 거스름 동전으로 자판기 콜라를 하나 꺼내 마셨다. 세상 어디를 가든 나는 남에게 지폐를 내밀며 동전을 바꾸어 달라는 간단한 부탁을 입에 쉽게 올리지 못한다. 날씨만큼 콜라 맛도 미지근했다. 이왕 산 수첩이니 뭔가 써넣을 밖에서 없어서 그때부터 귀국 항공편 기내에서까지 쓸데없는 것들을 깨알 같은 글씨로 수첩에 적어 넣었다. 이제와 그 수첩을 열어보니 언제 이걸 다 정리하지 싶어 난감하기도 하고 그것을 왜 정리해야 하는지 몰라 더욱 난감하다. 당초 블로그에 글을 적어 넣는 일이 집착으로 변할 즈음에 미련 없이 덮어버리자 생각했더니 집착이라고 인지한지 벌써 오래 전이지만 이 짓을 그만 둘 수 없다. 완전 난감하다.

내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로 산시(陝西)의 시황릉(始皇陵)과 그 병마용갱(兵馬俑坑)을 꼽고 있음에도, 또한 신화 속의 오 천년 전이 아니라 역사의 삼 천년 전 그 열국(列國)의 흥망성쇠에 녹은 뭇 영웅호걸과 제자백가들의 이야기를 한때 탐독한 바 있음에도, 그래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의 심오함에 찬탄을 아끼지 않고 있음에도 나는 오늘날의 중국, 중국 것, 중국인들에 대하여 호의적이지 않다. 그것은 논리보다는 개인적 경험과 편협한 감정 탓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한때 홍콩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을 때도 나는 그때의 홍콩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나는 그 시절 '쭝국 영화'의 대종을 이루던 피아노선 액션을 좋아하지 않았을 뿐 더러 솔직히 우습게 봤다. 중경삼림(重慶森林)이라는 영화는 누구인가의 손을 붙잡고 본 기억이 있으나 손을 붙잡으려고 영화를 보러 간 것이지 영화를 보려고 손을 붙잡은 것은 아닐 것이다. 미안한데, 실은 그 손이 누구의 손이었던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겠다. 첨밀밀(甛蜜蜜)을 눈물이 그렁그렁한 감흥으로 쳐다보기에 그 시절 내 사랑이 심드렁했고, 내 일상은 바쁘고 또 피로했다. 그 사이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다발로 타던 중국 대륙 영화 역시 내 관심 밖일 뿐이었다.

1997년 홍콩의 주권은 중국으로 되돌아 갔다. 홍콩의 주권 변동과 함께 지난 세기 말 짧았던 한 시대를 풍미한 홍콩 스타 거리에 스타는 떠나고 그들의 핸드 프린트만 남았다. 요즘 누가 홍콩 느와르(noir)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짧았던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홍콩 영화의 화석화된 흔적이란 것은 참 덧없기도 했다.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바바리 코트 휘날리며 쌍권총을 쏘던 우리의 주윤발은 헐리우드로 건너가 머리 박박 깎고 볼때기가 늘어져 우스꽝스러운 방탄승(Bulletproof Monk)이 되었다. 누구는 그것이 다 나이 탓, 세월 탓이라고 하겠지만 나이 탓도 세월 탓도 아니다. 우유섬(吳宇森), 아니다 오우삼이 홍콩을 떠날 때 홍콩 느와르(noir)의 간판은 내려졌고 그가 할리우드에 자리를 잡고 미션임파서블 투와 페이첵과 와호장룡을 들고 우리를 찾았을 때 그의 영화 속에 주윤발이 서있을 자리는 없었다. 버스 차창에서 흘깃 흘려본 청룽, 성룡(成龍)의 집은 화려했지만 성룡은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는다.

죽(竹)의 장막으로 드나들 수 있던 개구멍 홍콩, 죽의 장막이 걷히자 개구멍은 막혔다. 번영을 구가하던 자유 무역항 홍콩은 중국이 자유롭게 무역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유의 의미를 잃었다. 홍콩이 자랑하던 현대적 메가 포트(mega port)의 기능은 이제 홍콩 옆 중국 센젠(深川)으로 이동하고 있고 이동할 것이다. 안내인의 전언에 의하면 홍콩을 이루고 있는 또 하나의 섬 란타우에 세계 최대규모의 디즈니랜드가 있으니 홍콩의 더위가 한 풀 꺾이면 디즈니랜드에 놀러 오시라 한다.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다면 도쿄 디즈니랜드로 가고 말지. 홍콩 디즈니랜드로 대륙의 관광객들이 인해전술로 공격하듯 쳐들어 올 것을 기대하고 있을까? 마치 광저우(廣州)나 주하이(珠海)에서 넘어온 대륙의 도박꾼들이 마카우에 밀어 닥치듯.

버린 여자의 쇠락을 본 것처럼 뜨거운 바다 바람을 맞으며 걸어보는 스타가 떠난 스타 애비뉴 거리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오후에 홍콩섬을 한 바퀴 돌았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용두상을 보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가 돌고래쇼를 보거나 했다. 일행이 돌고래쇼를 보고 있을 때 나는 그 입구 벤치에 앉아 백인 아이 둘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젊은 동남아 여자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돌고래쇼를 보지 않았다. 스트립 쇼라면 모를까, 사람이 즐기는 쇼는 사람이 하는 쇼여야 한다.

홍콩의 밤, 홍콩의 밤거리를 걷던 나는 첨밀밀에서 이요와 소군이 일하던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어 섰다. 그리고 장대에 매달린 빨래가 만국기처럼 층층이 나부끼는 빽빽한 고층 아파트 사이 너머 홍콩의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달빛 아래 사랑 노래가 귓전에 은은해도 이요와 소군은 미국으로 떠났고 노래를 부른 여가수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달도 없는 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하늘을 보기에 날씨가 너무 흐렸다. 스타 애비뉴 왼쪽 편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오고 가는 셔틀 페리 선착장 난간에 기대 서서 나도 남들처럼 백만 불짜리 야경이라는 홍콩섬의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었다. 사진을 찍은 후 조그만 액정화면으로 장국영, 장궈룽(張國榮)이 자살한 만다린 오리엔탈(Mandarin Oriental)호텔이 사진에 담겼나 아무리 살펴봐도 찾을 수 없다. 잘 찍지도 못하는 카메라의 렌즈도 흔들렸고 백만 불짜리 야경을 밝히는 불빛도 흔들렸고 홍콩의 밤도 흔들렸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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