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국회의사당 앞 팔러먼트 스퀘어
JUN 2013 HWP
오래 전 우리 어린 시절에 형편 꽤나 되는 집 가정에는 어린이들이 위인들의 삶을 본 받아 꿈과 희망을 키우라는 어른들의 귀한 마음에서 세계위인전집 한 질씩은 구비되어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커서 세계위인전집에 실려있던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려 보자니 절대 본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위인 아닌 위인 중 한 사람이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다. 까마득한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전형적인 학교 열등생이었던 처칠이 삼수 끝에 들어간 영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문에 들어 전공을 세웠고 이후 영국 수상의 지위에 올라 제2차대전을 승전으로 이끌었다는 내용이 그 위인전기의 주요 플롯이었으리라
그런데 이 처칠이 실은 아버지 쪽으로 영국 왕실에 버금가는 귀족 중에 귀족 말버러공작 가문 출신이었다는 것, 모친은 어마어마한 미국 석유재벌의 딸이었다는 것, 삼수 끝에 겨우 영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친의 재력과 사교계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 소위 빽으로 뒷구녕 입학을 했다는 것이 따로 위인 전기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던 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처칠 스스로 언론인을 자처하기도 했거니와 그는 언론의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을 뿐 더러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는데 보어전쟁 기간 중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하여 일약 세간에 전쟁영웅으로 떠오른 이면에도 그의 이런 이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근거 있는 추론이 그 위인 전기에 따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처칠은 자신의 어마어마한 배경을 잘 활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그가 때로 보수주의자로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수구주의적 발언을 일삼았다는 것과 인종차별주의자로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활동을 했다는 것 역시 어린 시절 우리의 어린이들이 읽던 위인전기에 따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국 사람에게 처칠은 인기 있는 정치인이었을 것이나 영국 사람도 아닌 우리 어린이들이 처칠을 위인으로 삼아 본 받아야 할 이유는 적어도 내가 보기로는 없어 보인다.
아무튼 이 처칠에 대한 영국 사람들의 애정과 자랑은 오늘날에도 대단해서 그의 생가인 블레넘궁전 문지방이 닳도록 방문객이 끊이지 않고 영국 곳곳에서는 우리 이순신 장군 동상 만큼이나 많은 처칠의 동상에 세워져 있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딴 학교가 열 곳이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 의회가 자리잡은 그 고색창연한 고딕 양식의, 그러나 19세기 후반에야 건설된 웨스터민스터 궁전의 앞 마당 가장 좋은 자리에는 코트 깃 바짝 올리고 짝 다리 지대로 집고 선 처칠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우사스러운 행태를 영국 국민이 아닌 내가 할 이유는 없었고 다만 멀리서 동상의 모습을 담아온 못 찍은 사진 한 장을 기억하며 잡문으로 몇 마디 남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