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오래 전 어느 해 가을에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선유도 근방 한강에서 카약(Kayak) 타는 사람들을 봤다. 마침 선유도의 울창한 숲에는 단풍이 한창이라 그 장면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고 그 그림 같은 풍경 아래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때 인상이 강렬했던지 잊혀지지 않아 영국에 살 때 나도 카약 한대 장만했다. 귀국하면 아들과 함께 한강에 카약을 띄우리라 꿈꾸며. 물놀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아들이라 귀국 후 내 꿈은 금방 실현될 듯 했다. 하지만 귀국 후 바빠서 카약을 한강에 띄울 엄두를 내지 못했고 겨우 여유가 생기자 카약 띄우기에 무리인 겨울이 찾아왔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올 여름, 마침내 창고에 잠자던 카약을 띄울 호기가 찾아왔다. 오랜 숙원 사업을 이루는 분위기였는데 아뿔싸, 아들이 큰다는 것을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다. 그 일년 사이 아들은 키만 훌쩍 커버린 것이 아니라 아비에게 세이 노(say no)를 당당하게 외치는 법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아들에게 거부 당한 뻘쭘한 아비는 카약을 고이 창고에 모셔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궁하면 통하는 법, 얼마 전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이런저런 넋두리를 풀어 놓다가 내 불쌍한 카약 이야기를 했더니 급 반색하며 후배 친구가 나서지 않겠는가? 단번에 주말에 함께 카약킹(kayaking)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성산대교 하류 난지한강시민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 카약은 두둥, 조촐한 진수식과 함께, 그러나 결코 초라하지 않은 항해를 시작했다. 카약이 아니었더라면 성산대교 교각 아래 그 멋진 장면을 어찌 감상 하겠으며 양화대교 교각 위에 카약을 올리고 시원한 강 바람을 온전히 즐기겠는가? 마포와 여의도 사이 밤섬, 인구 천만을 넘는 거대 도시 한 가운데 자연환경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그 밤섬의 속내를 카약이 아니었다면 들여다 볼 수나 있었겠는가? 명실상부한 선주(ship owner)인 나도 그렇고 동료 후배도 모두 처음 나서는 항해라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어 한강 상류로 더 거슬러 올라 가보지는 못했으나 10km가 좀 넘는 처녀 항해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다. 카약킹에 삘이 완전 꽂혀버린 후배가 넌즈시 배를 빌려 달라 압력을 가했기로 대선료는 그날 저녁 소주 한잔 얻어 먹는 것으로 갈음하였고 나는 후배가 찍은 폰카 사진들을 수집하여 그날로 아들을 꼬득였다. 여전히 아들의 반응은 "글쎄요..."이나 다가오는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들과 꼭 선유도에서 카약킹을 해보겠다는 내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