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시절 내게 사람을 감동시킬 좋은 글을 쓸 소질이 있는 것으로 알았고 그때는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도 꽤 많이 읽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문학작품은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물론 내가 책 읽기를 멈춘 것은 아니고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들은 자전거 수리에 관한 책이라던가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에 관한 책, 미술 작품에 관한 책이라던가 하는 내 일상에 소용이 닿는 또는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그런 책이었지 순수 문학작품은 전혀 읽지 않았다.

최근 지인이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선물로 주어 그것을 읽고 있다. 제목을 보자 언뜻 오래 전에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이 떠올랐는데 『여행의 기술』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은 없어서 『여행의 이유』는 선물을 주신 분의 마음이라도 읽자 싶어 건성건성 책장을 넘겼다. 나는 김영하라는 사람이 우리 시대 매우 이름난 소설가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고 또 알쓸신잡이라는 방송을 통해 그가 어떻게 생겼으며 무슨 말들을 하는가 보기는 했지만 그의 책을 읽은 적은 없다. 그것은 아마 그와 내가 거의 동년배이고 그래서 그가 필명을 떨치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더 이상 순수 문학작품을 읽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솔직히 나는 합당한 이유 없이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글 쓰는 일을 거의 전업으로 한다는 그의 산문을 처음 읽으며 내가 왜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지 확실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서른 살이 되던 해에 결혼을 했는데 같이 학교를 다녔던 동창생 누구에게도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때 만났던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나는 또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소설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써왔을까?”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지만 올바른 길이 아닌 것 같다는 꺼림칙함, 혹여 그 꺼림칙함을 누가 엿보기라도 할까 들키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아니고 찜찜함이라는 말이 적당한 심리상태 그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무게를 늘 마음 속에 품고 살아왔는데 그게 최소한 그 방식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김영하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 친구가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결혼식장에 나도 서 있었다. 그런데 그는 혼자 소설이라도 썼지 나는 어떻게 이렇게 오래 샐러리 맨 생활을 해왔을까? 평범한 생각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낼 줄 아는 재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으나  마치 내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아무래도 나는 김영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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