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박찬일, 노중훈 공저 『백년식당

 

오늘날 행정명으로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교통부"라는 지명이 있다. 어린 시절 부산 범일동에 왠 난데없는 교통부인가 의아했는데 고등학교 때 그 동네 산다는 친구가 있어서 한번은 교통부가 왜 교통부냐 물었더니 "교통부라 카이 교통분갑다, 카지 머"라고 시쿤둥한 대답만 들을 수 있을 따름이어서 교통부에 얽힌 비밀은 끝내 풀지 못하고 내가 부산을 떠난 후 잊혀진 지명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최근 요리사 박찬일이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엮어낸 책 『백년식당』을 읽다가 마침내 그 교통부의 비밀을 풀 수 있었다. 책의 소개에 따르면 6.25 전에 전쟁이 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 호언장담한 - 알고보니 국민들에게 사기를 친 - 당시 정권은 막상 6.25 전쟁이 터지자 3일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저희들만 살겠다고 한강 다리를 폭파시켜 국민들의 피난길 마저 막아버린 채 부산으로 줄행랑 쳤는데 그 피난 정부의 - 달리 말하면 도망 정부의 - 정부 부처 교통부가 그 지역에 자리를 잡아 교통부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은 오늘날 우리가 부산의 대표 음식으로 치며 월남한 피난민 유래설이 가장 큰 설득력을 얻고 있는 돼지국밥 집, 부산 교통부의 "60년 전통 할매국밥"을 소개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60년 전통의 교통부 할매국밥이 대체 어디인가, 이번 주말 노모 뵈러 부산행 교통편까지 예약해두었으니 겸사 겸사 책에서 소개한 할매국밥집 대지국밥 맛이나 볼까 하여 검색해봤더니 "할매국밥" 검색 결과가 462건이 나왔는데 원조에, 태조에, 원조의 원조에, 전통에, 소문난에 아수라장 같았다. 하긴 할매가 보통명사요 국밥이 보통명사인데 누구 탓 할일도 아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책 속에 소개된 부산 동구 범일동 속칭 교통부 할매국밥, 월남한 시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은 가게를 6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업주는 서울내기인 저자의 귀에는 대지국밥으로 들린다는 돼지국밥을 오늘 하루도 오백 여 그릇 말아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자가 부산의 백년식당으로 책에 소개한 서면 마라톤집도, 해운대 소문난암소갈비도, 영도 삼진어묵도 나로서는 모르는 상호이니 내가 부산 사람보다는 동래 사람을 자처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부산광역시의 행정구인 동래구에 불과하나 부산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동래 출신이라는 자긍심 같은 것이 동래에서 자라며 나도 모르게 내 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은 아니가 싶다. 좋은 책 읽으며 언젠가 저자가 동래의 노포를 발견해서 소개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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