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 붓꽃 │ 1889년 │ 미국 로스엔젤레스 제이폴게티미술관

Vincent van Gogh │ Iries │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California

나이 서른에 직업 화가가 되겠다고 나선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앞길은 이전 그의 삶과 마찬가지로 순탄치 않았다. 파리에서 미술작품 중개인으로 자리를 잡은 동생 테오(Theo)에게 얹혀살던 고흐는 일세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인상파화가들과 교유했고 체계적으로 화가 수업을 받기 위해 화실에 적을 둔 적도 있었지만 고집불통이었으며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 탓에 미술수업도 다른 화가들과의 교유도 지속적이지 못했다.

서른다섯 살에 되던 해인 1888년에 파리에서 쫓겨나다시피 프랑스 남부 아를(Arles)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사랑 받는 그의 작품 대부분은 그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약 3년 간 그린 작품들이었다. 빈센트는 아를에서 화가들의 전원공동체를 꿈꿨다. 그가 그려댄 엄청난 작품들 단 한 점도 제대로 팔지 못한 그 작품들에 들어간 화구며 캔버스, 물감 따위들은 모두 동생 테오가 대야 했다. 그것이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그림 공부를 해보겠다고 화실 근처를 들락거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게다가 빈센트가 꿈꾼 화가들의 전원공동체를 먹여 살릴 몫도 물론 동생 테오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2016. 5. 8.

고갱(Paul Gauguin)과 함께 아를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빈센트는 그와 금방 불화를 겪고 말았으며 그 알량한 공동체의 존속기간은 겨우 두 달이었다. 고갱과 격렬하게 다툰 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잘라 창녀에게 가져다 주는 그야말로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고 말았다. 어릴 적 듣던 우스개 소리 중에 고갱이 고흐가 그린 자화상을 보고 귀를 잘못 그렸다고 훈수를 뒀는데 이에 격분한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잘라버리고 귀가 없는 자화상을 다시 그렸다고 한다. 나는 붕대를 귀에 얹고 있는 그 자화상을 런던 코톨드갤러리에서 봤다. 웃자고 만든 이야기이겠지만 둘은 예술적 지향점이 서로 달랐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고갱과 세상 무엇이건 타협할 줄 모르는 고흐는 처음부터 전혀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었다.

고흐는 성년 이후 끊임없이 병에 시달렸다. 치통이 그를 괴롭혔던가 하면 아를로 이주한 이후에는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발작이 그를 괴롭혔다. 그의 발작은 악성 빈혈 탓이라 하는데 정확한 병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병명이 무엇이건 간에 스스로 귀를 자르는 자해까지 이른 그의 행동은 더 이상 방치하기에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동생 테오는 형 빈센트를 결국 생래미(Saint Remy)에 있는 요양원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정신병원이라는 표현이 맞다. 고흐 자신도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성격상 심각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인문적 소양과 교양이 풍부했으며 외국어에도 능한 지식인이었다. 그의 이런 자질은 물론 동생과 나눈 "영혼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니만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강했다. 그는 요양원 생활을 통하여 병을 치유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했다.

2019. 6. 2.

그러나 정신병원에서의 생활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수시로 엄습하는 발작증세외에도 외부와 격리되어 있는 시간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밀레의 그림을 모작하거나 정신병원의 풍경을 화폭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그림을 그렸으며 그의 걸작 중 상당수가 이 생래미의 요양소에서 그려진 것이다. 그 중 아이리스(Iiris) 「붓꽃」은 생래미 요양소의 화단에 피어난 붓꽃을 화폭에 옮겨 놓은 작품이다. 「붓꽃」을 볼 때마다 나는 진창에서 피어난다는 연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야말로 정신병원에서 태어난 걸작이다. 생래미의 요양소에서 퇴원한 고흐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요양소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요양소 대신에 그가 택한 곳은 영원의 피안, 그렇게 요양소에서 나온 이듬해 1890년에 서른일곱 살 삶을 자살로 스스로 접었다.

1889년 생레미의 요양원에서 그린 자화상,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Vincent van Gogh│ Self-portrait │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고흐가 생래미에 있던 생폴드무솔 요양원(the mental hospital of Saint-Paul-de-Mausole )에 입원한 날은 5월 8일이었다. 오늘 5월 햇살이 눈부시던 날 한 세기 건너 저편에서는 한 위대한 화가가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고 세기 건너 이편의 나는 강변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발견한 붓꽃을 사진으로 담았다. 마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정신병원에 갇혀서 남긴 걸작들처럼 아무도 씨를 뿌리지 않았고 아무도 가꾸지 않는 강변에 붓꽃은 군락을 이루어 스스로 피어나 있었다.

'○ 아트 로그 > 어쩌다 본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저 나무를  (0) 2019.05.21
셀프 대관식  (0) 2019.05.10
나비의 꿈  (0) 2019.03.20
남향집  (0) 2019.02.23
달리의 창가에서  (0) 2019.02.21

+ Recent posts